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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18세기 조선 선비 홍대용의 '北京 견문록'

입력 | 2001-08-24 18:27:00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 지음, 김태준 박성순 옮김/504쪽 16000원/돌베개▼

18세기 중국 북경을 방문한 조선의 지식인 홍대용(洪大容·1731∼1783년)을 매혹시킨 것은 천주당 남쪽벽에 설치된 거대한 서양악기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던 그는 이 장엄하고 신비한 악기를 시험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자국의 악기제도를 본떠서 한 곡조를 연주했다. 평생 처음 보는 서양의 건반 악기를 한 번 관찰하고 나서 그 악기의 소리나는 원리를 터득하고 연주할 만큼 그의 예술적 과학적 안목은 뛰어났다.

이 책은 홍대용이 한글로 쓴 북경여행기 ‘을병연행록’을 현대어로 알기 쉽게 고친 것이다. 워낙 장편이어서 전체를 담지 못하고 일부를 빼기는 했으나 북경에 간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신세계 여행’을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다녀온 사절단은 대체로 그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연행록(燕行錄)이라고 한다. 북경의 별칭인 연경(燕京)을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이다. 홍대용의 연행록은 김창업(金昌業)의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연행록으로 꼽힌다.

홍대용은 조선 외교사절단의 기록담당관인 삼촌 홍억(洪檍)의 개인비서쯤 되는 자격으로 35세 때인 1765년 북경을 향해 떠나 이듬해 4월 27일 170일만에 한양으로 돌아온 뒤 연행록을 남겼다.

홍대용의 연행록은 한글판과 한문본이 따로 있다는 점이 특징. ‘을병연행록’은 당대에 부녀자를 겨냥해 한글로 씌어진 흔치 않은 기행문학이다. 이의 원본격으로 지식층을 대상으로 쓴 한문본 ‘담헌일기(湛軒日記)’도 남아 있다.

옮긴이인 김태준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는 서문에서 “홍대용은 청나라 고증학의 비조라는 대진(戴震)이나 왕부지(王夫之), 일본의 자연철학자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圓)에 비교되기도 하고 동시대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에 비교되기도 한다”며 “이 일기 속에는 개인적 여행의 체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와, 이를 뛰어넘을 문명적 비전이 제시되어 있다”고 말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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