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금동대향로'/ 서성록 지음/ 488쪽 2만5000원 학고재
1993년12월13일, 한국의 고고학 미술사학 고대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충남 부여의 능산리 절터에서 ‘엄청난’ 유물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제 금동대향로’. 공주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 고고학의 최대 성과, 백제 문화의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국보 287호로 지정됐다. 정교한 금속공예술과 빼어난 조형미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향로에 대한 정치(精緻)한 연구 결과는 아직 많지 않다. 그동안의 일반적인 평가는 대개 ‘중국 한대(漢代) 박산(博山)향로의 영향을 받은 불교적 공양구. 도교사상과 불교사상 등 동양사상의 근본원리를 백제사상으로 융합해 완벽한 조형예술로 표현한 걸작. 제작시기는 백제 사비시대인 6세기말∼7세기초’ 정도.
이 책은 금동대향로 하나를 집중 탐구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간의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뒤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재야 사학자.
우선, 저자의 새로운 견해. ‘백제 성왕때 사비 천도를 준비하면서 신궁(神宮)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 제작 시기는 6세기초. 향로가 발굴된 곳은 절터가 아니라 신궁터로 추정. 즉, 백제왕실의 조상신과 신령들을 모시는데 사용된 샤머니즘적 향로. 한대 박산향로보다는 서역의 요소를 채용한 북위(北魏)향로의 영향을 받았다. 조각된 5악사와 5기러기는 고대 동북아의 전통적인 정치체제인 5부체제를, 각종 인물상 동물상은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 향로에서 드러나듯 삼국시대 문화는 도교 불교가 아니라 샤머니즘적 요소가 더 중요했다. 불교 중심으로 삼국문화를 보아선 곤란하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 파격적이고 도전적이다.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연꽃이 조각됐다고 해서 그것이 불교적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적 접근, 박산향로에 그치지 않고 북위향로와 비교 고찰을 시도한 점 등등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금동대향로를 보는 시각을 폭넓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대한 관련자료를 통해 향로로 접근해가는 그의 열정도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무리가 따르기도 한다. 5악사 5기러기를 5부체제와 연결시키는 것, 발굴장소가 절터가 아니라는 견해 등이 그렇다. 5부체제 주장은 지나치게 상상력에 의존한 듯한 인상이다. 또한 발굴 장소에선 최근 사찰 이름이 적힌 목간(木簡·글씨를 써넣은 나무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는데 이 책은 놓치고 있다. 고고학 자료에 대한 과학적 천착이 부족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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