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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방형남/리더십 세계여행

입력 | 2001-08-26 18:21:00


참 궁금했다. 한반도의 반쪽에 불과한 땅에 5000만명이 채 안 되는 인구를 가진 한국도 이토록 지독한 혼란과 갈등으로 갈팡질팡하는데 광활한 영토를 가졌거나 수억명의 인구를 가진 국가들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특파원들과 상의한 결과 외국의 리더십을 분석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그 결과물이 최근 6회에 걸쳐 본보 국제면에 연재된 ‘국가적 혼란 어떻게 푸나’라는 시리즈였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영국 일본의 러더십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지도층과 국민이인정하는 ‘무언가’에 의해 국가를 일관되게 경영하고 있다는 점만은 한결같았다.

미국은 ‘문제 대통령’을 갖고 있다. 지식인들이 거침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바보’라고 지칭할 정도로 대통령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무성하다. 지난해 말에는 선거 후 36일간 대통령당선자가 결정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고 올 들어서는 상원 다수당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어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됐다. 그런데도 미국은 혼란스럽지 않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치(法治)에 의해 국가가 경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정치판은 한국 관점에서 보면 절망적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우파인 공화국연합(RPR) 출신이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좌파인 사회당(PS) 출신이다. 정치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는 싸우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으로 프랑스가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오히려 우파 대통령과 좌파 총리가 공존하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이 시작된 97년 이후 경제가 크게 호전되는 등 국정운영 성적표는 좋기만 하다. 프랑스인들은 우파와 좌파가 동거는 하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라고 하기 싫은 러시아와 중국의 리더십도 만만치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리더십은 ‘통합과 설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그는 국론통합을 목표로 설득을 통해 공산당이 주도하는 의회, 정치에까지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두재벌(올리가르흐), 거대한 관료집단, 강력한 지방정부 등 기득권 세력을 동반자로 만들었다.

중국 리더십의 근간은 원칙주의다. 개혁개방의 시발점이 된 덩샤오핑(鄧小平)의 78년 말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 연설에서 보듯 중국 지도부는 원칙을 정한 뒤 정책을 결정하고 이후에는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실행해 오늘의 성공을 일궈냈다.

외국언론이 같은 관점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조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남남갈등’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해진 국론분열에 주목해 ‘대결의 리더십’으로 제목을 뽑거나 ‘법과 원칙대로’를 강조하며 상당수 국민의 비판을 외면하는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고집의 리더십’으로 하지는 않을까. 꼭 집어 언급할 만한 리더십이 있는 국가로 비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한 수 배우자는 취지로 출발한 리더십 세계여행. 암울한 국내 상황이 더욱 분명해져 후기(後記)를 쓰는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방형남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