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바둑/프로 입단대회 참가기]"꿈깨지는 순간 아무소리도…"

입력 | 2001-08-26 18:41:00


올해가 마지막 승부다. 겨우 만 19세의 나이에 인생의 마지막 승부 운운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로기사 입단에 관한 한 그렇다.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만 18세까지 입단하지 못하면 퇴출된다. 나도 지난해 퇴출 대상이었지만 지도 사범님들이 직권으로 1년 연장시켜 줬다. 고마울 뿐이다. 물론 이번에 입단 못하면 당연히 퇴출된다.

연구생에서 퇴출당한 형들을 여럿 봐 왔다. 끝내 입단 문턱에서 실패한 그들의 좌절과 허탈함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15세. 늦은 나이에 그저 바둑이 좋아서, 나만큼 센 아이들과 바둑을 두고 싶어서 들어온 한국기원 연구생. 하지만 동기들 모두 입단하고 후배도 벌써 입단했는데 나는 ‘데드라인’에 걸려있다.

연구생 1조에 속한 예비 프로기사들의 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도 안된다. 당일 컨디션이 누가 좋은가, 누가 승부에 대한 집중력을 더 갖고 있는가, 누가 큰 승부에서 담대한가에 달려있다.

첫째 날.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 얼굴이 부었다. 그러나 컨디션은 좋았다. 2연승. 일단 한 고비는 넘겼다는 심정이었다. 이튿날, 세째날도 각각 2연승을 거둬 6연승. 백홍석(15)이 같은 6연승, 박진솔(15)이 5승 1패. 대충 이 세명 정도로 입단자가 압축됐다.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 길은 멀었다. 지난해 일반인 입단대회에 참가했을 때도 초반 출발이 좋았다. 그러나 막판 고비에서 3연패를 당해 2명의 입단자에 끼지 못하고 3위에 그쳤다.

넷째날, 한판을 더 이기고 박진솔과 대결을 벌였다. 나는 7승, 그는 6승 1패. 입단을 위한 결정적인 고비. 평소 형 동생하는 사이지만 이 상황에선 상대를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박진솔도 이 판을 지면 입단이 좌절되기 때문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부딪쳐 왔다. 하지만 상대의 대마를 몰아가며 중앙에 큰 집을 지어 미세하나마 승리를 예감할 수 있었다. 나의 1집반승. 그는 굳은 얼굴로 복기도 없이 바둑돌을 주워 담은 뒤 휙 나가버렸다.

결국 마지막까지 왔다. 백홍석도 8연승. 마지막날 한 판에 모든 운명이 걸렸다.

스승인 허장회 사범님은 평소 내게 “실력은 뛰어난데 마음이 여려 결정적인 고비에서 주저 앉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부담 갖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24일, 백홍석과 마주 앉았다. 초반 득을 봐 반걸음 정도 앞선 느낌. 그러나 중반 이후 우세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패착. 4집반패.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국이 끝나고 심판장인 홍종현 8단께서 바둑에 대해 이것 저것을 지적했지만 나의 귀에는 무슨 소리인지 들어오지 않았다.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