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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江山 만들자는 피서인가”

입력 | 2001-08-26 18:48:00


피서객들이 머물다 간 곳들은 한결같이 쓰레기와 악취로 뒤덮여 있었다.

전국의 해수욕장, 산과 계곡, 섬 등지에서는 이제 현지 관리직원들과 주민, 환경단체 회원 등이 총동원돼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의 ‘피서지 문화’, 이대로 좋은가.


▽해수욕장〓25일 오후 1시경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 아직 드문드문 피서객이 남아 있는 가운데 백사장 곳곳에는 맥주캔 소주병과 먹다 버린 옥수수더미가 쌓여 있고 반쯤 묻힌 담배꽁초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캠프파이어의 흔적으로 백사장은 검게 그을려 있고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모래에서는 악취가 풍겨 나왔다.

강릉시는 3∼4년에 한 번씩 검게 그을린 모래를 퍼내고 새 모래를 채운다. 올해도 25t 덤프트럭 72대 분량의 모래 1800㎥를 교환했으나 백사장은 곳곳이 또다시 검게 물들었다.

“쓰레기를 파묻지만 않아도 일거리가 훨씬 줄겠어요.”

해수욕장 관리직원들은 피서객들이 백사장에 파묻고 가버린 음식물을 찾고 꺼내느라 짜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쓰레기를 수거해야 할 판이다.

검게 물들고 오염된 백사장 면적은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이 현상은 인근 작은 해수욕장들로 확산되고 있다.

강원도내 90여개 해수욕장을 관리하고 있는 강원도 환동해출장소의 한 관계자는 “99년부터 동해안 일선 시군들이 피서객 유치를 위해 해수욕장 입장료를 받지 않았으나 내년부터는 입장료를 다시 징수, 쓰레기 수거 등의 문제를 개선토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입장료에 쓰레기 봉투값을 포함, 무단투기를 통제한 후 그래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2003년부터는 백사장에 아예 음식물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강경 입장을 밝혔다.

경남 남해군 송정해수욕장 번영회의 최유미(崔有美·22)씨는 “20일 해수욕장을 폐장했지만 아직까지 마무리 청소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 상주해수욕장 등을 관리하는 한려해상관리사무소 본소 임석찬(林錫燦) 계장은 “이번 여름에는 피서객 17만명이 지난해보다 30t이나 많은 99t을 버리고 갔다”고 밝혔다.

남해군은 27일부터 31일까지를 ‘특별 청소주간’으로 정하고 지역 내 해수욕장과 산, 계곡, 해안 등 26개소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에 나선다. 이 기간에는 주민과 학생, 해수욕장 번영회, 공무원 등이 총동원된다.

이번 여름 89만여명이 다녀간 서해안 31개 해수욕장을 관할하는 충남 태안군도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공무원과 주민, 각 단체 회원 등을 동원한다.

▽산과 계곡〓26일 오후 3시 설악산 울산바위 정상.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은 안개 속의 비경을 감상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정상을 밟은 기쁨도 한순간.

수십m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던 등산객과 관광객들의 눈길은 실망의 눈초리로 바뀌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절벽 틈새마다 담배꽁초와 생수병, 그리고 과자포장지 등이 마구 나뒹굴고 있었다.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쓰레기 수거 직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왜 절벽아래로 쓰레기를 내던지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수십m 절벽 아래로 떨어진 한 조각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직원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목숨을 걸고 자일을 타야 해요.”

설악환경운동본부 회원들은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설악산 비선대 7∼8m 계곡 물속에서 깨진 병조각 등을 건져내기도 했다. 3명의 전문 스쿠버 다이버들이 수중장비를 갖추고 20여㎏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드는 시간은 거의 한나절.

이번 여름 22만8000여명이 다녀간 지리산의 피아골 뱀사골 화엄사계곡 달궁계곡 노고단 등 일대에도 음식물 쓰레기를 도로변에 버리거나 심지어 계곡 바위틈에다 몰래 숨겨놓아 직원들이 쓰레기 수거에 애를 먹고 있다.

올해 처음 개장한 전북 남원시 산내면 달궁계곡 오토캠핑장에는 재활용품 수거대가 설치됐으나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돼 직원들이 밤낮으로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화장실 안에 쓰레기를 몰래 숨겨놓고 간 얌체 피서객들도 있다.

▽울릉도 거제도 홍도〓주민이 1만여명인 울릉도의 하루 쓰레기 발생량은 13t 가량. 하루 20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7∼8월 관광성수기에는 18t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상당량의 쓰레기가 도동항과 저동항의 해안 계곡 등산로 약수터 등에서 발견된다. 여름철엔 울릉군청 등 군내 기관단체 직원 500여명이 토요일마다 오전 11시부터 3시간 동안 해안과 계곡으로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다. 매번 수거하는 쓰레기는 2.5t 청소차로 1대 분량.

도동항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500평 가량의 소공원. 울릉도의 유일한 공원이라 밤시간에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아침이면 소주병, 음식찌꺼기, 캔, 도시락통, 과자봉지 등 먹고 마신 뒤의 찌꺼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도동항에 있는 100ℓ짜리 쓰레기 분리수거통에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울릉군청 환경과 정충권(鄭忠權) 계장은 “요즘은 아이스박스에 음식과 물까지 담아오는 관광객이 많다”며 “먹고 난 쓰레기를 섬에다 아무렇게나 버리는 건 울릉도와 주민들을 무시하는 상식이하의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경남 거제시와 통영시 일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관리사무소 동부지소는 매일 공공근로자 46명, 임시직원 5명과 트럭 4대로도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제시청 김성현(金成賢) 청소담당은 “거제시 관내에서 이번 여름에 처리한 쓰레기는 602t으로 지난해의 500t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자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된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는 휴가철인 7월29일부터 8월15일까지 하루평균 2000여명씩 모두 36만여명이 다녀갔다.

섬 곳곳에 설치된 쓰레기 분리 수거함 15개를 통한 수거율은 70%에 불과했다. 밤만 되면 피서객들이 해안도로에 나와 음식물을 먹고 난 뒤 제대로 치우지 않아 직원들이 아침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느라 곤욕을 치렀다.

sunghy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