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28·LA다저스)가 20일 뉴욕 메츠전에서 5이닝 4실점하고 패전투수가 되자 다저스의 짐 트레이시 감독은 인터뷰에서 “에이스로서 투지가 부족하다”며 박찬호에게 공개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언론들은 박찬호의 능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른바 ‘찬호 흠집내기’였다.
하지만 25일 애틀랜타 터너필드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박찬호는 ‘근성’과 ‘투지’가 어떤 것인지 트레이시 감독과 동료들에게 똑똑히 보여줬다. 이날 박찬호는 9이닝 5안타 1실점 완투로 지난달 29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이후 5경기 27일 만에 12승째(9패)를 따내며 그에게 쏟아지던 비난을 일거에 잠재웠다.
이날 그의 근성을 보여준 두 장면.
▽4-1로 앞선 9회말 2사 1, 2루〓큰 것 한방만 맞으면 동점이 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짐 트레이시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갔다. 그가 마운드에 오르면 백이면 백 투수교체 상황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트레이시 감독을 쏘아봤다. 더 던지겠다는 ‘무언의 항변’. 트레이시 감독은 “그의 눈과 마주쳤는데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 타자를 더 잡아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스’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박찬호의 의지가 확고함을 느낀 트레이시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다저스의 팀동료인 숀 그린은 “9회 감독이 나왔다가 그냥 들어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투수교체 없이 그냥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역시 9회말 2사 1루〓6번 존스의 타석 때 투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에서 포수 머리 위를 넘는 어이없는 폭투가 나왔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투구수가 110개를 넘어가면서 체력이 거의 소진된 상황. 하지만 박찬호는 기합소리를 넣어가며 마지막 힘을 쏟아붓는 듯한 피칭을 했다.
애틀랜타의 4번 타자 브라이언 조던은 9회 박찬호가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100마일(161㎞)짜리 공을 꽂아넣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승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자세 때문에 그는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며 감탄했다. 최근 직구스피드가 부쩍 떨어졌던 박찬호는 9회에도 151㎞짜리 강속구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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