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곁에서 본 고란 이바니세비치(크로아티아)는 키만 껑충 크고 비쩍 말라보였다. 허름한 티셔츠 차림의 그에게서 올 윔블던 챔피언다운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코트에서 훈련할 때만큼은 진지한 눈빛으로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27일 밤(이하 한국시간)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테니스대회인 US오픈 개막을 앞두고 세계 최정상 남녀 프로선수들은 26일 미국 뉴욕 플러싱메도의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코트 적응과 마지막 컨디션 조절에 구슬땀을 흘렸다. 이번 대회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 가장 많은 1580만달러의 총상금을 놓고 ‘별들의 전쟁’이 코트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영광 재현〓‘한국 테니스의 간판’ 이형택(삼성증권)은 지난해 16강에 오르며 거센 ‘코리안 돌풍’을 일으켰다. 이 대회를 통해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그는 29일 세계 32위인 니콜라스 에스쿠드(프랑스)와 맞붙는다. 에스쿠드는 안정된 스트로크가 주무기로 올라운드 플레이를 펼친다는 게 이형택의 분석. 몸 상태가 좋다는 이형택은 “스트로크에서 대등하게 맞선다면 해볼 만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형택은 테일러 덴트(미국) 등을 연습 파트너로 삼아 막바지 샷감각을 끌어올렸다.
▽신데렐라〓‘여자 희망봉’ 조윤정(삼성증권)은 예선을 거쳐 생애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본선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128명이 출전한 예선에서 3승을 거둬 16명에게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거머쥔 것. 이덕희 박성희에 이어 한국인 여자선수로는 통산 3번째 메이저 본선 진출이며 98년 US오픈 때 윤용일 박성희 이후 다시 한국인 남녀 선수 동반 출전을 이뤘다. 그러나 조윤정은 여자단식 1회전에서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지난해 대회에서는 준결승까지 올랐던 강호 엘레나 데멘티에바(러시아)와 싸우게 됐다. 조윤정은 “꿈을 이룬 것 같다”며 “힘든 승부가 예상되지만 후회 없도록 좀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남녀 판도〓올해 3개 메이저대회에서는 남자단식 우승자의 얼굴이 매번 바뀌었다. 절대 강자가 사라진 가운데 프랑스오픈 챔피언인 톱시드의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과 호주오픈 우승자인 안드레 아가시(미국)가 우승 후보로 꼽힌다. 대회 통산 4회 우승의 피트 샘프러스(미국)는 상위 시드 배정자와 잇달아 만나게 되는 최악의 대진운을 보였다.
여자단식에서는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미국) 자매의 결승 격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언니 비너스는 타이틀 방어에 도전하며 세레나는 99년 우승 이후 정상 복귀를 꿈꾼다. 제니퍼 캐프리아티(미국)는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 우승에 이은 시즌 메이저 3승의 야망을 품고 있으며 1번 시드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도 정상을 넘보고 있다.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