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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김기덕-송일곤, 작가주의 두 감독 베니스로 날다

입력 | 2001-08-27 18:31:00


#극과 극의 두 감독

김 감독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침표가 언제 찍힐지 알 수 없는 다변가다. 반면 느릿느릿한 송 감독의 말투는, 문장 부호로 치자면 쉼표 투성이다.

작품을 찍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몰아치듯 빨리 영화를 찍는 것으로 유명한 김 감독이 ‘수취인불명’을 완성하는데 걸린 기간은 고작 한달 반. ‘완벽주의자’라는 평을 듣는 송 감독은 ‘꽃섬’의 후반작업에만 6개월이 걸렸다.

“일곤이는 이제 30대 초반인데, 벌써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징그럽기까지 하다”고 김 감독은 평한다.

감독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도 판이하다. 농업전수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의 전부인 김 감독은 농사와 공장일을 하다가 해병대를 거쳐 96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송 감독은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된 유학파다.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단편영화로 일찌감치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었고, 칸영화제 수상으로 20대에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일곤이는 정말 아는 게 많다”며 감탄하는 김 감독이 정작 송 감독에게서 탐내는 것은 ‘마스크’. 당초 김 감독은 최근 촬영을 마친 ‘나쁜 남자’의 주인공 역에 송 감독을 점찍었다. ‘꽃섬’ 일정 때문에 무산됐지만 김 감독은 아직까지 아쉬워한다.

송 감독은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도 연기를 직접 해보려 한다”면서도 특유의 느릿한 저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제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생겼나요?”

#베니스 진출작의 아픔

‘수취인불명’은 베니스 초청이 결정된 후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으로부터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지만 국내 흥행성적은 저조했다. 지난해 6월 개봉된 이 영화는 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채 일주일만에 간판을 내렸다.

칸의 후광을 업은 송 감독도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 그가 장편 데뷔작으로 생각한 작품은 ‘칼’이라는 영화였다. 하지만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작사를 찾지 못해 결국 포기했다. 그나마 제작사를 구한 ‘꽃섬’도 제작비가 3억5000만원이 든 저예산 디지털영화다. 요즘 한국 영화 제작비가 70억 원까지 치솟은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베니스 영화제 진출에 대한 소감은 두 감독 모두 담담했다. 해외에서 인정받아도 흥행성이 없으면 여전히 제작비조차 구하기 힘든 충무로의 현실과, 작가주의 영화를 외면하는 국내 관객의 취향을 잘 알기 때문일까.

“앞으로 어깨에 힘을 더 빼고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찾아내겠다. 언젠가는 작가주의 영화도 대중들에게 스며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송일곤)

“해외 영화제에 나가야만 주목받는 현실이 슬프다. 어차피 국내에서 한계가 있다면 베니스영화제 참가를 계기로 해외 판매를 적극 모색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김기덕)

10월 국내 개봉되는 송일곤 감독의 ‘꽃섬’은 대중적 재미도 생각해 만든 작품이지만 송감독은 ‘베니스 진출작〓예술 영화〓재미없는 영화’라는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sjkang@donga.com

▼5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29일부터 9월 8일까지 10일간 열리는 제5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는 장편 76편, 중편 단편 52편, 다큐멘터리 12편 등 모두 14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개막작에는 ‘비포 더 레인’으로 잘 알려진 밀코 만체프스키 감독의 ‘먼지’가 선정됐다. 올 해 특별 공로상의 영광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으로 꼽히는 에릭 로메르에게 돌아간다.

올 베니스 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장편의 경쟁부분이 이원화(二元化) 됐다는 점. 중견 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겨루는 ‘베니스58’, 젊은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현재의 영화’ 두 부분으로 나뉜 것.

한국 영화는 ‘수취인불명’이 ‘베니스58’에, ‘꽃섬’이 ‘현재의 영화’에 진출했다. 또 단편 경쟁부분에는 권일순 감독의 ‘숨바꼭질’과 홍두현 감독의 ‘노을소리’가 초청됐다. 또 조선족인 장뤼 감독의 ‘11세’도 단편 경쟁부분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