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학교수 자리를 미련없이 던지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로 내려온 지 12년째. 한국화가 이왈종씨(56)는 서귀포의 자택 겸 화실에서 새벽마다 창 밖 정원너머로 바다를 쳐다보며 창작의 산통(産痛)을 치르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10∼15시간씩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창작에 전념해온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지만 생각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며 고뇌 어린 표정을 짓는다.
25일 찾아가 본 그의 제주 서귀포 화실은 곳곳에 한지와 물감 등이 널려 있고 벽에는 거의 완성돼 가는 푸른 색 보자기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화실에 보관돼 있는 작품이 별로 없어 한산해 보이기까지 한다.
“9월 대구 송화당 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할 그림 30여 점을 이미 보냈지요. 또 여기서 만든 작품들은 서울 집으로 보내 보관토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곳엔 보여드릴 작품이 별로 없네요.”
그는 지난해 2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를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으니 이번 개인전은 1년반만에 갖는 것. 중간에 신문삽화전 등을 갖기도 했으나 본격적인 개인전은 아니었다.
그는 또 오는 10월 서울 롯데화랑에서 오용길 이정신 등 다른 화가 10명과 함께 갖는 몽골 풍경전에도 작품 6점을 출품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3일부터 열흘 간 이들과 함께 스케치 여행차 몽골을 다녀왔다.
요즘 그는 회화 외에 제주의 현무암을 소재로 입체조각품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현무암 작업을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어요. 돌을 보러 한번 가야 하는 건데…. 여기 저기 파다보면 노다지가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해보고 있어요.”
그는 집에서 자동차로 30분간 떨어진 핀크스 골프장을 자주 찾는다. 그의 골프실력은 83타 안팎. ‘그림을 그리다’는 뜻의 ‘핀크스(Pinx)’를 골프장 이름으로 지을 정도로 주인인 재일동포 사업가는 미술애호가다.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왈종은 골프장 프론트데스크 벽의 대형 벽화(가로 6m40, 세로2m70) 등을 그렸고, 그의 물고기 그림 디자인은 골프장의 아이콘으로 식당의 찻잔과 식기 골프모자 등에 등장하기도 한다.
“제주는 공기 좋고 성가시게 구는 사람이 없어 좋아요. 앞으로는 골프장도 한번 본격적으로 그려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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