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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의 미국 바로보기]시시콜콜한 규정들 숨막히다

입력 | 2001-08-28 18:22:00


답답한 한국, 갑갑한 미국

이곳 시애틀에서 나는 주로 노선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대학 캠퍼스의 주차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중 버스의 내부 벽면에는 승객이 지켜야 할 이른바 ‘행동강령’으로 무려 열 가지가 게시돼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금연이나 인화물 반입 금지처럼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지극히 상식적이거나 당연한 것들이다.

버스 운임을 정해진 대로 낼 것, 자리에 눕거나 한 사람이 좌석 두 개 이상을 차지하지 말 것, 차내 통로를 가로막지 말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런 규정을 위반하면 체포되거나 벌금을 내야 하고 차에서 추방된다는 등의 벌칙까지 자세히 적혀 있다.

▼법-질서 유지엔 도움되지만…▼

몇주 전에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어본 ‘워싱턴주 운전자 가이드’도 이와 매우 유사했다. 주정부 면허국이 발행한 이 공식 책자는 안전운행에 관한 금과옥조(金科玉條)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명문화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들도 너무나 많다.

운전 중에 도로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충고라든가, ‘핸즈프리’ 휴대전화의 사용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권유까지는 있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주행 중 다른 사람이 교통위반 딱지를 떼이는 장면을 쳐다보느라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구절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환경 보호를 위한 당국의 노력은 비난할 수 없지만, 주법(州法)이 50달러 미만의 벌금을 걸고 쓰레기 봉투의 차내(車內) 비치를 의무화한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운전 교습을 위한 ‘국정 교과서’에는 심지어 이런 내용도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개들은 자전거 페달이 돌아가는 모습에 쉽게 매료되는 경향이 있는데, 다음 세 가지 종류의 방법으로 뒤따라오는 개를 퇴치하라고 안내한다. ‘개를 무시해버리거나, 단호하고도 큰 목소리로 ‘노’라고 고함칠 것,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자전거로 개와 사람 사이를 차단할 것.’ 운전을 잘 하기 위해 잠을 푹 자두라는 것이나 위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운전하기 전에는 소식(小食)이 좋다는 것도 시시콜콜한 주문이기는 마찬가지. 운전 중에 화가 잔뜩 나 있는 다른 운전자를 만나면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내용도 운전면허 시험 준비 책자에 꼭 실려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일상생활에는 이와 같은 규범의 법제화와 상식의 성문화(成文化)가 전반적으로 충만해 있다. 물론 이들이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도모하고 사회적 공익과 효율성을 신장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기야 미국처럼 역사와 전통이 일천하고 관습과 연줄이 미약한 신생 이민국가라면 이런 사회제도적 장치는 애초부터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쉽게 신뢰할 수 없는데다가 타인의 기본 도덕성에 대한 기대마저 불안한 상태에서, 규범과 상식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선호나 선택이 아니라 공적인 규제와 법적인 통제를 동반하는 사회적 자원으로 최대한 전화(轉化)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법과 질서의 유지를 위해 공짜 버스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환기되는 곳이 미국이며, 공공부문의 ‘과잉 친절’을 통해 자전거를 탈 때 개를 따돌리는 요령까지 새삼 배우고 익히게 되는 나라가 또한 미국인 것이다.

규범이 크게 헝클어져 있고 최소한의 상식마저 통하지 않을 때가 많은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미국 사회의 이런 단면이 일면 부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법치주의의 성숙이 요원한 가운데 국가로부터 과잉은커녕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아본 기억이 없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법적 문제’에 집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국을 무조건 본받거나 따라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규범의 자생적 발현이 억제되고 상식의 창의적 준거가 약화되는 동안 미국 사회의 인간관계는 점차 ‘작아진’ 개인들 사이의 ‘사소한’ 법적 문제에 집중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 손해, 이익, 책임 등의 개념에 주로 의존하면서 과연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근년에 부쩍 활발해지고 있는 소위 ‘좋은 사회(good society)’ 논쟁은 바로 이러한 미국 사회의 숨은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이 답답하다면 미국은 갑갑하다.

(한림대 교수·사회학·현 워싱턴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