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9월 3일부터 5일까지 북한을 공식 방문한다고 중국과 북한 당국이 동시에 발표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북한을 공식 방문한 것은 1992년 양상쿤(楊尙昆) 주석의 평양 방문 이후 9년만의 일이라는 점에서 장 주석의 북한 공식 방문은 양국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과 장 주석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양국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장 주석의 북한 공식방문과 정상회담은 양국간 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3각 관계의 복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 대 초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한소 및 한중 수교, 그리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사망과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등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훼손되고 표류하던 북방 3각 관계가 복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강경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을 앞두고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고, 미국의 압력에 공동으로 대항할 수 있는 북방 3각 관계의 전략적 연대를 확보하려는 김 위원장의 구상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김정일-장쩌민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공동 인식과 그에 대한 대응이 주요 안건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즉 북한은 북한을 빌미로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비난하고, 다시 한번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외부 세력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강조하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전통적인 대(對)한반도 정책이 남북한 당사자 원칙에 입각해 당사자간의 타협과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 그리고 남북한 관계 개선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미국 견제를 위한 양국간 공조체제를 실천해 보이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북한-중국-러시아간의 전략적 북방 3각 관계가 부활되면서 한국-미국-일본의 남방 3각 관계와의 대립과 갈등이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부강한 중국의 등장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에 대항해 아시아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경쟁과 갈등이 앞으로 동북아시아에서 복잡한 합종연횡의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고, 남북한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비롯해 북방 3각 관계의 발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냉전시대와 달리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갈등과 경쟁이 과거와 같이 적대적 대립관계로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 북한 체제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적대적 갈등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해소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북-러 및 북-중 관계의 정상화로 부활되고 있는 북방 3각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한적이긴 하지만 일부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주의’가 북한의 ‘모험주의’를 견제할 수 있고, 또 한반도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북한 당사자들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해 가는데중국과 러시아의 암묵적 지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할 경우 한미일 3국 공조체제에 미묘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남북한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맹국인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문제, 이를테면 핵과 미사일문제뿐만 아니라 주한미군문제 등에 대해서 미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섣부르게 대응하려고 한다면 한국과 미국간의 오해가 남방 3각 관계의 균열로 이어지면서 지역적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탈냉전시대의 한반도문제 해결 방안은 북-중 관계 개선과 북한의 안정화, 그리고 한미 협력관계의 강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과정에서 모색돼야 한다고 하겠다.
서 진 영(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