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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집에선 폭군 회사선 친절맨

입력 | 2001-08-30 18:29:00


30대 중반의 서모씨. 그는 스스로를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한다.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의 이중인격이 갈라지는 지점은 집과 밖이다.

집에서 그는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쫀쫀(?)하게 잔소리가 많고, 가족한테 요구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다. 당연히 아내나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없다.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라서 그가 퇴근하면 인사만 하고는 사라진다. 아내는 어떠냐 하면, 언젠가 크게 싸울 때, “당신 퇴근 시간 다가오는 게 어떤 땐 무섭다”고 해서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밖에서 그는 매너있고, 친절하다. 또 남들 어려운 모습은 볼 수가 없어서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곤 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 회사에서, 특히 여직원들은 모두들 그의 아내를 부러워한다. 자기들도 그렇게 운이 좋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집을 가고 싶다는 둥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사정없이 찔리는 기분입니다. 내가 얼마나 뻔뻔한 이중인격자인지 그때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도 없거든요.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 관계가 좋은데, 왜 가장 가까운 사람들하고는 그게 안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이다. 그래서 누가 옆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이중인격자가 어떻고 하는 대화만 나눠도 우스울 정도로 예민해진다고.

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밖에서 잘하는 것은 남들한테 싫은 소리 듣고 거부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선 그런 두려움이 없거나 심하지 않다. 그러니 어떨 땐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까지 얹어서 배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기대치도 높다. 그러니 실망도 크고 그것이 분노반응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남들을 대하는 데 너무 익숙해진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사람도 집에서까지 가면을 쓰고 있진 않다. 그러다 보니 가족한테 자기 속모습을 다 내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이중인격자로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우리한테는 누구나 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가족을 대할 때, 좀더 따뜻하고 인정있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다. 안그러면, 언제 가족이 반기를 들고 퇴출을 외칠지 모르니까.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