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내음 듬뿍… 무공해 건강식
곤달비·참나물·참취·둥글레·원추리·고사리·더덕 등 우리 나라 산나물 종류만도 500여 종이지만, 이 가운데 곤드레나물로 찐 밥은 제주에 가서 ‘깅이죽’(바닷게죽)만큼이나 먹어보기 힘든 음식이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정선간 국도의 비행기재가 뚫리기 전에는 정선과 평창을 걸어서 성마령을 넘나들며 생활했기 때문에 평창과 정선은 문화적으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미탄면 평안(平安) 2리를 한치(寒峙)마을이라고 하는데 한 20여 호쯤 되는 동네다. 이 한치마을 뒷산을 청옥산(靑玉山)이라고 한다. 높이 1263m에 달한다. 이 산 속의 구릉지는 고랭지로 600여 마지기의 땅 넓이가 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나물 밭이다.
주민은 봄철이면 곤드레나물을 뜯어다 죽을 쑤고 밥을 해먹는다. 병자년(1936)엔 큰 수해가 있어 흉년이 들었는데 다른 지방 사람으로 나물밭은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황기가 없고 주식으로 대용해도 배탈이 없는 것이 곤드레밥이다. 평창·정선 사람에겐 그만큼 고마운 산나물인지도 모른다. 곤드레나물을 뜯으며 부른 노래가 바로 평창·정선 지방의 아라리로 굳어졌다.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나지미 맛만 같다면/ 병자년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지금도 정선·평창 지방에서 나이든 사람은 곤드레타령과 함께 나물 맛을 잊지 못한다. 이는 마치 구황식요(救荒食謠)인 청산별곡(靑山別曲)에 나오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구조개 나마자기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와 같은 겨레의 숨결이 담긴 노랫가락이다. 예전에는 곤드레밥이 아니라 죽을 먹었으나 지금은 쌀보리와 곤드레나물을 넣고 지은 밥에 막장(막 버무린 된장과 고추장)을 치고 찌개를 곁들여 썩썩 비벼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곤드레는 4∼5월 움돋이 때 고갱이에서 대여섯 닢 필 때쯤 뜯는 것이 좋다. 한해살이풀로 참취나물만큼 키가 크며, 여름이 지나면 중간 보라색 꽃이 핀다. 참나물과는 달리 이파리에 솜털이 붙고, 잎은 둥글며 끝은 뾰족하다. 봄에 뜯어 말려 겨울에도 해먹고 젯나물로도 좋다. 냉동보관이 가능하니 생채로 삶아 물기가 있는 것을 축축하게 보관해 여름 더위지기로도 제맛이 난다. 나물 향이 그윽하고 향긋한 게 특징이다. 오죽하면 나물을 뜯으며 ‘나지미’(사랑하는 사람) 맛만 같아라고 하겠는가. 영동 고속도로~새말~안흥~방림~평창읍의 프로스펙스 대리점 안집에 사는 서울 고종목 시인의 누님인 고금종씨의 안내를 받아도 되고, 한치마을까지는 30분 거리니 그 동네에 가서 곤드레밥을 먹을 수도 있다.
곤드레야말로 구황식품이면서 오늘날에는 건강식으로 각광 받는다. 동시에 춘곤증을 끄는 별미 중 별식이다. 메밀가루로 만든 총떡이나 얼레미에 묽은 반죽을 쳐낼 때 하늘하늘 올챙이처럼 떨어지는 올챙이묵, 또는 감자바위라 할 만큼 주식이 된 감자나 옥수수와는 달리 보릿고개를 넘기는 데 톡톡히 한몫한 자연식품이었다. 초원지대의 몽골음식인 카릴텍스(칼국수)나 샤브라(밀국수)와는 달리 고원지대를 대표하는 분지식품이라는 점에서 유독 신선한 맛을 느낀다. 지금은 곤드레밥을 파는 음식점이 없기에 봄철 관광열차가 뜨면 가족과 함께 나물을 뜯어다가 그대로 쌈밥을 해먹는 것도 서울의 별식이 될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신선한 삶을 구가하는 한 활력소가 될 것이다.
춘천의 막국수, 참죽부각, 초당두부 또는 동해안의 명태식혜며 오징어순대와 함께 유명한 것으로‘쇠미역쌈밥’이 있다면 영동 해안지방과는 구별되는 것이 영서의 ‘곤드레쌈밥’이다. 또 고려가요인 청산별곡의 ‘나마자기’(해초)가 구황식 식요의 대표적인 풀이라면 곤드레야말로 산간지방 식요의 대표적인 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