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서비스에도 분명 ‘수준’이 존재합니다. 돈 없는 사람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공적(公的) 의료 체계도 필요하지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적(私的) 의료 체계도 공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형욱씨(연세대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연구강사·34·사진)는 지난 ‘의료대란’의 와중에서 공적 의료 체계와 사적 의료 체계의 병존을 강력히 주장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 그가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 ‘의사를 죽여서 의료를 살릴 수 있다면’(청년의사)을 펴냈다.
“의료정책을 연구하는 저로서는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작년 주간신문 ‘청년의사’와 월간지 ‘인물과 사상’에 의약분업에 관한 글들을 기고했고 그에 대한 거친 반론을 받으면서 논쟁에 휩쓸리게 됐지요.”
의료행위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적 의료체계론’에 따르면 북한과 영국을 유사한 이상적 모델로 본다. 이 책에서 박씨는 이렇게 북한과 영국의 의료체계를 같은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타당하겠냐며 문제 제기에 나선다.
모든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책임지게 돼 있는 사회주의체제의 북한과 달리, 영국 독일 등에서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의료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도 국가의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사적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획일적 의료체계 하에서는 부당이득을 챙기기 위한 부당 의료행위와 양질의 의료행위를 모두 불법적 의료행위로 간주하게 되는 모순을 빚게 됩니다.”
현재 우리의 여건에서는 첨단의 의료 기술과 기계가 요구되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료를 시장경제 논리에 맡기자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그는 오히려 공적 부분에 대한 정부의 재정투자는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획일적 의료정책하에서 양질의 의료행위를 하려는 의사들마저 부당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들과 함께 비난을 받게 되는 점이다.
“의료의 공공성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비리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공적 의료에 대한 국민의 책임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공적 의료는 우리 사회가 재정을 부담해서 지켜내야 할 영역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재정정책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주장도 여러 주장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의료 문제는 모든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활발한 토론과정을 거쳐 좋은 방법을 찾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