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DJP 공조 파기로 귀결된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은 코앞에 닥친 정기국회 운영부터 내년 양대 선거 국면까지 길고 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장관 한 사람의 해임을 둘러싼 원내 세 대결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과 자민련의 정체성 논쟁으로부터 촉발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제 정치권은 외견상으로는 ‘2여 1야’ 구도에서 ‘1여 1.5야’ 구도로 바뀌었다. 자민련은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0.5야’가 됐지만 여전히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역할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이 향후 어떤 진로를 택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으나 적어도 정체성이 걸린 사안에 관한 한 보수색깔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민주당과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자민련이 바로 한나라당 쪽에 다가설 것 같지도 않다. 자민련 관계자들이 그동안 거듭 강조했듯이 민생과 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사안별 공조를 하면서, ‘반쪽 정당’이지만 제3당으로서의 존립 명분을 찾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한-자동맹’도 성사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글 싣는 순서▼
- ① 정국 어디로
- ② DJ-JP-이회창 3인의 대차대조표
- ③ 이한동 줄다리기
- ④'李'잔류 JP대응 촉각
- ⑤당정개편 싸고 계파갈등 치달아
문제는 국정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와 민주당. 자민련이 외면하는 한 시급한 국정 현안 처리를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은 한나라당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여권이 내세우고 있는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도 ‘한나라당에 대한 호소와 압박’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여권이 이 시점에서 당장 취할 수 있는 길은 대야(對野) 관계를 개선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내에서는 의석수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이미 제의해 놓고 있는 여야 영수회담 추진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한나라당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하는 데 대해 여권으로선 끊임없이 불안해하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권이 결국은 정치권의 지형을 바꾸기 위한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이라는 분석도 이에서 연유한다.
더욱이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정계개편 유혹은 점차 커질 것이나, 상황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라는 부동의 대선주자가 있는 데다 이번 ‘임동원 파문’으로 정당간의 색깔이나 경계가 한층 뚜렷해져 정치권의 유동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정국의 최대 관심사는 한나라당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명실상부한 제1당으로서 정국운영에서 보다 많은 지분을 요구할 것이나, 이전과는 다른 접근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임동원 해임안’ 정국에서의 승리가 한나라당에 여유를 안겨줬고, ‘힘의 우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여권을 더 이상 몰아붙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한나라당이 고심하는 것은 여권에 대한 견제와 협조를 어느 수준에서 조절해야 정국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또한 그 과정에서 자민련과의 관계도 원만히 유지하려 할 것이나, 전면적 협력관계나 동맹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내심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선거정국에서의 유불리와 득실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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