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차츰 가시며 가을의 길목에 바짝 다가섰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아름답고 쾌적한 한국의 가을은 나에게 절로 흥이 나게 한다. ‘한국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것이 벌써 20년째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한국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필자는 스스로 ‘51%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과 한국인을, 그리고 한국음식을 사랑한다. 20년 전 한국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몇 안 되는 양식당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통해 향수를 달래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양식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식당을 찾아다닌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중 하나는 깻잎인데 젓가락 사용이 웬만한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참으로 먹기 까다로운 음식이다. 점잖은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집어먹을 수도 없고 해서 젓가락 사용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먹고 싶어도 바라만 보는 고통을 상당히 오랫동안 감수해야 했다.
필자는 음식 문화가 그 나라의 국민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접시 위에 고깃덩어리 하나와 감자 몇 개를 덩그러니 올려놓고 전쟁터에서 싸움이라도 하듯이 창(포크)과 칼을 양손에 들고 덤비는 유럽의 음식문화는 투박하고 견고한 그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반면 올망졸망한 많은 수의 작은 접시들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올려져 있는 음식을 정교한 젓가락의 움직임으로 집어먹는 한국의 음식문화는 한국인의 섬세함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대다수의 음식점에서 식탁에 올려진 갖가지 음식들이 식사가 끝나면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한다. 사람 좋고 정이 많아 하나라도 더 주려는 후한 인심 때문에 먹고도 남을 만큼의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는 것이겠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낭비이며 쓰레기의 증가로 환경문제를 가중시키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번은 독일에서 몇몇 한국분들과 함께 현지의 한국음식점을 찾은 적이 있다. 이제는 독일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을 찾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처럼 음식을 주문하고 오랜만에 맛보게 될 한국음식을 기대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음식이 조리돼 나왔을 때 우리는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현실에 약간은 허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어떤 반찬도 없이 주문한 음식만 덩그러니 식탁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한국식당에서는 현지의 다른 식당과 마찬가지로 심지어 반찬까지도 값을 치르고 따로 주문해야 한다. 우리는 김치를 비롯한 몇몇 반찬을 추가로 주문했고 별도로 값을 치렀기 때문인지 식탁 위의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식당을 찾은 모든 이들의 식탁에서 남은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야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 하나의 음식(반찬)에 대해 주문을 통해 값을 치른다면 음식 쓰레기로 인한 폐단은 줄어들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고 있고 손님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아쉬운 것은 고도의 산업화로 인해 쾌적한 자연환경의 보전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와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부문별로 괄목할 만한 개선도 이뤄졌지만 아직도 숙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나라의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보전은 국민과 정부가 인내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성과가 나타난다.
젓가락으로 깻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는 한국인만의 섬세함과 침착함으로 산 좋고 물 좋은 예전의 금수강산을 차근차근 되찾아 가기를 바란다.
▼약력▼
플로리안 슈프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와 베를린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이사와 남아공독일상공회의소 대표 등을 지냈다. 1981년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를 맡은 이후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98년 해외 주재 독일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에 취임했으며 1999년에는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플로리안 슈프너(한독상공회의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