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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日평론가, 이어령교수 퇴임논문집서 이어령 비판

입력 | 2001-09-04 18:37:00

이어령 교수(좌) & 가라타니 고진(우)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퇴임을 기념하는 논문집에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이 교수의 주장을 비판한 글이 실린다. 이 교수는 지난 봄학기를 끝으로 교수직에 물러났으며 7일 이화여대에서 고별강연을 갖는다.

퇴임 기념 논문집에는 해당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는 글을 싣는 게 일반적인 관행. 이에 비춰 볼 때 이번 고진의 비판적인 글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더구나 이 교수 본인이 가라타니 고진 글을 논문집에 수록하기를 희망한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5일 출간되는 ‘상상력의 거미줄-이어령 문학의 길찾기’(생각의 나무)에 실린 가라타니 고진의 글은 이 교수가 1982년 발표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비판하는 내용의 논문 ‘사케이(借景)에 관한 고찰.’

1996년 작성된 이 논문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이 교수는 16세기 이후에 나타난 축소 문화를 마치 일본적 전통인 것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적 산물의 하나인 축소 문화를 본질적인 민족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고진은 일본식 정원 구성방식인 ‘사케이(借景)’를 이 교수를 반박하는 예로 들었다. ‘사케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연을 빌려온다’는 뜻. 그러나 고진은 “‘사케이’는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을 일종의 렌즈를 통해 축소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무한(無限)’의 개념과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원근법의 발명이 무한한 3차원적 공간을, 유한한 2차원적 공간에 담을 수 있게 했듯이 ‘사케이’ 역시 무한한 규모의 자연을 작은 공간안에 끌어 안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나는 역사적 관점보다 구조적 관계를 중시하는 공시론자(共時論者)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통시론자(通時論者)인 가라타니 고진과는 일본의 축소문화를 비평하는데 있어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면서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가라타니 고진은 대단히 탄탄한 논리로 글을 전개했다”면서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내 주장과 논리를 한층 더 명료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3시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대회의장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이 교수는 퇴임 이후 문학 비평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단 한명의 독자라도 좋으니 대중적인 글쓰기를 접고 이제 내가 그동안 진정 써보고 싶었던 전문적인 글들을 쓰겠다”고 말했다.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