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강남권 저밀도지구 재건축이 사업시기 조정을 둘러싸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시와 해당 자치구가 사업계획승인을 앞두고 사업시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 떠넘기기를 거듭하면서 재건축사업이 장기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사업이 계속 늦어지자 주민들은 “공무원의 ‘떠넘기기 행정’ 때문에 애꿎은 우리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집단민원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건축 시기조정 혼선〓5개 저밀도지구 가운데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은 강남구와 송파구의 저밀도지구.
강남구 청담 도곡 저밀도지구는 13개 재건축단지 가운데 현재 8개 단지가 사업계획승인 신청서를 구청에 제출해 놓았다. 송파구도 주공 2, 3, 4단지와 시영 등 4개 단지가 지난달 사업계획승인 신청을 내놓은 상태로 두 곳 모두 사업승인이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가 한꺼번에 재건축사업을 벌일 경우 전세난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각 지구 내 단지별로 재건축 시기조정을 의무화하면서 제동을 건 것. 서울시는 청담 도곡지구는 2500가구 단위로, 잠실지구는 단지별로 사업우선순위를 정하도록 재건축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침을 마련해 놓고도 서울시와 자치구가 막상 “구체적인 시기조정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핑퐁게임’을 계속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강남구와 송파구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구청에서 복수추천을 해오면 시장이 시기를 조정해줄 용의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구체적 지침이 내려오는 대로 사업승인을 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청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서울시는 “근거 없다”며 발끈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재건축사업 승인권한은 엄연히 구청장이 갖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시에서는 재건축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단지별로 조정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주민들 불만 고조〓이처럼 양측이 재건축시기 문제를 놓고 서로 발뺌하는 속내는 저밀도단지 가운데 후순위를 받아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해당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민원이 제기될 소지가 있기 때문.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에서 선순위를 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수천가구의 이해가 걸린 민감한 사안”이라며 “후순위로 밀린 주민들이 집단으로 구청에 몰려올 게 뻔하기 때문에 민선 구청장으로서는 결정하기에 큰 부담이 따른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시로서도 사업승인 권한이 구청장에게 있는 사안에 괜히 개입해 비난을 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자신들의 업무를 ‘간격 조정’에 국한시키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떠넘기기를 계속하며 사업승인을 미루자 재건축사업이 표류하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청담 저밀도지구 주민 김모씨(49)는 “7월 사업승인 신청서를 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어 재건축조합에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인위적인 시기조정에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조합측에 맡겨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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