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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희망이다]"대충은 없다" 영국의 교사양성 시스템

입력 | 2001-09-07 18:31:00

영국의 수습교사가 놀이를 통해초등생들에게 각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걸로 직각을 만들어 보세요.”

영국 런던 비트릭스 포터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수습교사 캐서린 호스킨스(31·여)가 시계의 큰바늘과 작은바늘 모양의 종이를 주고 학생 한 명을 불러 칠판에 직각을 만들게 했다.

그녀는 이어 교실 바닥에 종이를 내려놓고 학생 몇 명을 불러 직각을 만들게 했다.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2, 3차례 ‘직각 만들기 놀이’를 한 호스킨스씨는 학생들에게 A4용지 크기의 문제지를 나눠줬다. 바둑판 모양 무늬에 사선이 그어져 있었고 선과 선이 만드는 각이 직각인 곳에 ○표를 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학생들이 끙끙거리며 숨겨진 직각을 찾아내는 동안 떠들며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는 한 남학생에게 주의를 주고 칠판 한 구석에 ‘마가렛’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호스킨스씨는 이날 수업을 하기 위해 집에서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지도교사가 학습자료를 만들고 수업하는 방법 등을 사전에 지도했다. 그녀는 한 학기가 시작되기 전(영국은 1년 3학기제임) ‘학교 계획’(School Plan)을 세우고 이 계획에 따라 이날 수업을 한 것이다.

호스킨스씨는 수습교사가 되기 전 미술관에서 아트 리스토어러(투자가치가 있는 미술품 목록을 작성하는 사람)로 6년 이상 일했다. 현장학습을 하러 온 초등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가르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교사가 되기로 했다.

▼글 싣는 순서▼


4부 교사 자질 높여라
1. 교포 학부모 좌담
2. 교사양성
3. 경영자 교장
4. 교사연수
5. 교권확보

☞ '교육은 희망이다' 연재 기사모음

이 학교의 또 다른 수습교사인 카트로리나 링(34·여)은 투자은행 컨설턴트로 8년간 일했는데 세 명의 자녀를 키우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소중하다고 느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교사가 되면 이전 직장에 비해 연봉이 형편없이 깎이게 된다. 돈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엄격한 1년간 수습교사로 일하며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국에서 교사는 힘든 직업이어서 신규 교사의 40%가 5년 안에 교직을 떠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현장 지도 능력’을 갖춘 우수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자격 기준을 계속 강화하면서 이직으로 인한 빈자리를 메우려 노력하고 있다. 교사의 질이 교육을 좌우하며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비록 빈자리가 있더라도 ‘숫자 채우기 식’으로 교원을 늘리지는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94년에 설립된 교원양성원(TTA)이 수업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기준을 설정하며 재정 지원을 전담하고 있다. TTA는 98년에 ‘변화의 시점에 선 교사’란 개혁안을 발표하고 △교사 개인별 진로기록부(98년) △1년 과정의 수습교사제(99년) △성과급(2000년) 등 각종 조치를 취했다.

영국에서 교사가 되려면 우선 중등학교졸업자격시험(GCSE)의 영어 수학 과학 과목에서 C+ 이상을 받아야 한다. C+는 중상 이상의 성적이다. 또 가르치려는 과목과 관련된 분야에서 최소한 2개 이상의 ‘A-level 테스트’(대학입학학력고사)의 성적을 제출해야 한다. 물론 가르치려는 과목의 학사학위가 있어야 한다. 중학교 때부터 학업성취도가 높은 사람만이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사 희망자는 지방교육청에서 진로지도 차원에서 실시하는 3일간의 ‘탐색과정’에서 자신의 자질과 적성 등을 알아볼 수 있으며 교직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탐색과정을 거쳐 수습교사가 되면 1년간 학교 현장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교육청이 주관하는 이론교육을 받는다. 교육관련법 심리학 교습법 등이 주된 내용이다.

수습교사 기간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개인별 진로기록부에 따라 수습교사의 장점과 보완점, 양성목표와 실행계획 등을 적고 학교에서 이를 평가해 앞으로 더 개발해야 할 분야와 수정된 목표 등을 상세히 기록한다. 이 기록부는 교사로 임용되면 근무하는 학교에 제출된다. 교장과 지도교사는 수습교사를 4단계로 평가한다. 이 평가에 따라 초봉이 연 2000파운드(약 37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영국 교사의 초봉은 대개 1만6050파운드(약 2970만원)이다. 수습교사들의 학습지도능력을 배가시키려는 유인책이다.

교직 희망자는 수습기간을 마친 뒤 교사자격기준 시험을 통과해야 교사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으며 일할 학교를 직접 골라 인터뷰를 거쳐 채용된다. 학교마다 학생의 학력도 다르고 재정도 차이가 있어 교사가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다르다.

수학 물리 등 몇 과목은 항상 만성적인 교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TTA는 매년 지원금을 늘리는 한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대상으로 교사 모집을 강화하고 있다. 이 연령대는 영국인들이 첫 직업을 바꾸는 시기다.

TTA의 대변인은 “교사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직업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교직에 진출하고 있다. 런던의 사립 중등학교인 위트기프트 스쿨의 외국어 주임교사인 서더 랜드는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무엇인가 직접 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면서 “교사의 다양성이 영국 교육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英교원노조 시노트 사무부총장▼

“정부가 교사에게 높은 자질을 요구하는데 이는 우리도 바라던 일이다.”

영국 전국교원노조 스티브 시노트 사무부총장의 교원정책에 대한 이 같은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시노트 부총장은 “낮은 봉급과 사회적 지위, 교사들에 대한 비난, 과중한 업무 부담 등으로 교사의 이직률이 높다”면서 “정부는 학급당 인원을 줄여 교사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교사들은 정부가 교사를 무능력자로 몰아붙인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한국과 유사하다. 영국 교원노조는 정부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대응하고 있다.

시노트 부총장은 “얼마 전 정부가 교사 1만5000명이 무능력자라고 말했지만 노조는 정부가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조사했다”면서 “노조는 교사 가운데 약 2000명이 무능력자라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느 사회나 직종에도 무능력자가 있으며 교사 중 무능력자의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라며 “정부가 국민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성과급에 대해 시노트 부총장은 “봉급에 차이를 두는 것은 좋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따라 봉급이 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학업성취도는 여러 요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교사의 자질을 평가해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는▼

교사가 되려면 장기간 현장실습을 해야 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국가인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자.

독일에서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우선 초등 중등 고등 특수교육 등 자격증별로 필요한 교직과목을 대학에서 이수해야 한다. 반드시 전공과 부전공 과목을 함께 이수해 2과목 이상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이수기간은 대개 9학기. 교생 실습기간은 8∼12주다.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1차 국가고시를 치러 잠정적 공무원인 실습교사가 될 수 있다.

자격증별로 차이는 있지만 1차 국가고시는 대개 구두 및 필기시험, 논문제출 등으로 이뤄진다.

프랑크푸르트시 초등교사 1차 국가고시는 △학생 행동양식 △교과목 전문지식 △교수법 및 실습 △초등학교 수업개념 △어린이 생활 역사 △유치원 지식 △어린이의 법적 권리 △어린이와 놀이 등에 대해 평가한다.

실습교사는 1주에 10시간가량 학교에서 실습하면서 교육청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한다. 세미나에서 교육학 교육심리학 공무원법 교습법 학교행정 등을 배운다. 수업 실습은 ‘수업 참관→지도교사 참관 수업→수업’ 등 3단계로 이뤄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교육청 전문가들이 참관해 지도한다.

2년간 실습을 마친 뒤에 2차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정교사 자격증을 받는다. 2차 국가고시는 △논문 △전공과 부전공 시범 수업 2시간 △구두시험(교육청 세미나 과목 평가)으로 평가한다.

프랑크푸르트시 지역 교육장 말러바인 루드비그는 “관할 지역에 교사 6000명이 있는데 15년간 부적격자 2명만 추방할 수 있었다”면서 “이들은 모두 실습교사였으며 일단 정교사가 되면 추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20여명의 부적격자가 있다고 보는데 이들을 추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신분보장이 엄격한 독일 교육계의 고민이다.

▼한국 교사양성 문제점▼

“구체적으로 학생들을 다루고 지도하는 법을 배웠어야 하는데….”

새내기 교사인 김모씨(27·여·서울 K초등학교)는 막상 교단에 서고 보니 교육대의 교육과정이 얼마나 현장과 유리되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론 중심 교육의 결과였다.

교수들도 교육현장 경험이 적어 예비 교사들에게 현장에서 유용한 방법을 가르치기 힘들다.

교육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초등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이 전국적으로 1 대 1 수준이어서 교육대생은 ‘구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범대생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아예 학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S대 사범대생 박모씨(25)는 “암기식 시험인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사설학원을 찾아 공부한다”고 말했다. 아예 사설학원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하는 사범대도 있을 정도다.

교원 임용고시는 교실에서 수업 잘하는 사람을 선발하기보다 ‘지식 총량’을 측정하는 데 그치고 있다. 교사자격증도 대학에서 일정기간 정해진 과목과 실습을 이수하면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어 ‘교사자격증소지자〓교사 능력 소지자’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힘들다.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교직 교양과정 교육과정 등에 대한 필기시험 70점+적성 인격 교양 등에 대한 면접 20점+실기 10점’으로 선발한다.

중등교사의 경우 ‘교육학 30점+전공 70점’인 1차 시험과 ‘논술 20점+면접 10점+실기 20점’인 2차 시험으로 선발한다. 실기시험은 응시생이 평가관들 앞에서 약 10분간 수업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나마 지난해 임용고시에서 지필고사의 비중을 축소하고 실기능력과 면접을 강화한 결과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신규 임용 교사에 대한 연수를 강화한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임용 이후 연수만으로 교사의 현장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6개월간 현장 실습을 마친 뒤 교사로 임용하는 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외국과 같이 수습기간을 두고 실무 능력을 평가해 교사로 임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예산 부족이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조정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당장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