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젊은 연구자들과 더불어 ‘생태사회연구소’를 연 적이 있었다. 한번은 “그 곳이 살아있는 명태들의 군거 현상을 연구하는 곳인가”라고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너무도 친숙한 용어지만 10년 전만 해도 ‘생태’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낯설었는가를 반증해 주는 일화다.
나의 연구영역이 바로 이 생태 패러다임이다. 생태 패러다임은 환경파괴 문제에서 시작하여 기존 인간과 자연 관계의 단절에 물음을 던지고, 사회 내 모든 위계관계들과 남성중심성, 서구중심성, 이성중심성 등을 비판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나의 연구 초반이 생태 패러다임의 관점 형성에 맞춰져 있었다면, 현재 나는 생태논의의 한국적 수용이란 길로 접어들고 있다.
나에게 한국적 수용은 두 가지 작업을 말한다. 하나는 서구 생태논의를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틀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그 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이론을 우리에게 맞게 바꾸는 근거가 된다. 현재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생태여성론과 녹색국가론의 정립에 집중하고 있다.
생태여성론은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로서의 생태여성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다. 후자가 여성주의적 틀을 견지한다면, 전자는 생태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체제에 물음을 제기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이론체계를 지향한다. 아직 체계화 정교화되진 않았지만, 현재 한국여성환경운동의 전개 과정과 환경정책의 성평등성 분석에의 적용까지 진행되어, 곧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녹색국가론에 내가 천착하는 것은 사실 생태론에서 보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 이유는 친생태적 미래사회에 대한 밑그림들이 자율적 시민사회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는 별로 다루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생태 환경문제를 이유로 과학자나 종교적 지도자가 군림하는 독재국가와 국가 그 자체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녹색국가들을 유형화하고, 새만금 간척사업과 동강댐 건설을 사례로 한국 국가의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적 수용의 두 번째 작업은 서구 생태론을 한국 전통사상의 언어들로 다시 짜는 일이다. 나에게 언어는 여전히 존재의 집이며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힘을 가지고 있다. 서구 개념을 대체한 우리 언어는 서구이론을 변형시킬 것이다. 나는 생태여성론의 개념들을 19세기 말 등장한 동학, 원불교, 증산도 등의 언어로 바꾸고 이를 개념화 이론화하는 공동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 작업들이 정치생태학의 정립에 기여할 수 있길 희망한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생태학은 일상 속에 침투한 남성(성) 중심의 국가가 어떻게 인간의 가치체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지역생태계 및 공동체를 파괴 변형시키며 이 안의 제반 인간관계를 단절 억압하는지를 분석 교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문순홍(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