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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기업경영 투명성 아직 멀었다"

입력 | 2001-09-09 18:30:00


《한국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비슷한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보기술(IT) 및 벤처산업 침체에 따라 미국의 경기가 좀처럼 활력을 되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각국간에 통상마찰이 거세지는 등 외부적인 악조건이 외환위기 이후 한숨을 돌린 한국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의 전문가들의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과제 등을 들어본다.》

▽무엇이 문제인가〓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일부 개선되고 있지만 기업경영의 투명성 부족이 여전히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개리 매서 사장은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근본적인 문제는 투명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매서 사장은 “투명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기업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 신뢰를 가질 수 없고 이는 미래에 불확실성으로 이어져 외국인 투자 유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 컨설팅 이병남 부사장은 “지난해 국내 200대 기업의 수익성은 선진국보다 3.5% 포인트 이상 떨어지며 전자 정보처리 유통산업을 제외하면 격차 폭은 4∼5% 포인트 이상 벌어진다”며 저수익 구조를 지적했다. 이같은 낮은 수익률은 과다 설비 등에 따른 것으로 같은 액수의 투자자산 대비 매출액이 선진업체의 70%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A T 커니 미야키 케이지(宮木啓治) 부사장은 한국내 큰 재벌기업조차 세계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는 브랜드가 부족해 내수 시장이 좁은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로 뻣어나가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외환위기 이후 추진돼 온 구조조정이 아직 미흡하고 정부의 과다한 규제가 계속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의 불안감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장점은 없나〓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풍부한 통신 인프라와 빠른 정보의 확산은 앞으로 큰 잠재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병남 부사장은 “기업들이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벤처 마인드가 확산된 것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얻은 값진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베인 & 컴퍼니 이성용 부사장은 “세계 시장에서 나타나는 기술과 제품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확산돼 세계 어느 국가에서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사장은 또 “벤처기업뿐 아니라 재벌 등 전통적인 기업에서도 왕성한 기업가 정신이 넘쳐 한국경제 전체가 ‘벤처 경제’로 운영될 수 있는 토대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매서 사장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는 동북아에서 한국은 중심지에 위치한데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큰 재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액센츄어 한봉훈사장은 “삼성전자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등은 해당 업계에서 세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등 제조업 기반도 탄탄하며 한국 근로자들은 근면 성실하고 높은 교육수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과제는〓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외국인 한국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핵심분야에 집중하고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수익성 위주의 경영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이성용 부사장은 특히 “부실기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자정(自靜) 메커니즘’이 구축되야 한다고 말했다.

미야키 부사장은 “장기적으로는 급부상하는 중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면서 한국만이 차별화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또 구세대 장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첨단 차세대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한국은 차세대 산업을 키우는 ‘인큐베이션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금융제도의 투명 합리성 높이기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