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깨를 목으로 모으고 힘줘 보세요. 그리고 ‘아’ 소리를 내보세요.”
“아∼.”
“이번엔 어깨에 힘을 빼고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다음 소리를 내보세요.”
“아∼.”
“어때요. 소리내기가 훨씬 편하죠. 노래는 몸의 긴장을 풀고 편한 상태에서 불러야 잘 부를 수 있습니다. 알았죠.”
“예∼.”
6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마포 평생학습관 ‘음치교정교실’. 노래강사 이수영씨(27)가 30여명의 주부에게 가을 학기 첫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씨는 수강생들의 몸을 간단한 체조로 풀어준 다음 발성의 원리, 호흡법 등 노래의 기초 이론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이어 신시사이저를 직접 연주하면서 가수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소리’란 노래를 두 소절만 가르쳤다. ‘노래교실은 노래를 많이 배우는 곳이 아니고 한 곡이라도 제대로 배우는 곳’이란 것이 이씨의 지론이기 때문. 수업이 끝나기 30분전부터 이씨는 수강생들의 노래를 일일이 들으면서 음치의 원인을 진단했다.
▽1.8평에서 새우잠〓“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노래를 가르치고 싶었어요.”
이씨는 98년 1월부터 노래강사를 시작했지만 같은 해 12월 이를 그만두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병원 음치클리닉’의 수강생이 됐다. 노래 지도법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1.8평 고시원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6개월 동안 오전 10시∼오후 6시 클리닉을 찾은 ‘환자’가 어떻게 음치를 탈출하는지 일일이 기록해 ‘음치 일지’를 만들었다. 오후 7시부터는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한 시간 넘게 대중가요를 혼자 연습했다. 대학 시절 민중가요만 불러 대중가요는 거의 몰랐기 때문. 하지만 이젠 전국에서 몇 안되는 음치교정 노래강사로 통한다.
▽‘준비된’ 노래강사〓전북대 생물학과 출신인 이씨가 노래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대학 단과대학 연합노래패 ‘백두 한라’의 멤버로 활동하면서부터다. 노래를 통해 뭔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 식물학자의 꿈을 포기하고 노래강사를 ‘업(業)’으로 택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미 ‘준비된’ 노래강사였다. 7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 때 록그룹 ‘Rock In’의 보컬이었던 오빠에게 기타를 배웠다. 대학 때는 신시사이저와 베이스기타를 공부했다. 무엇보다 노래가 좋다. 노래를 부르거나 가르치는 동안에는 세상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수영씨가 30,40대에게 추천하는 노래10곡▼
성별
제 목
가수
남
그 겨울의 찻집
조용필
사랑했어요
김현식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안치환
너를 위해
임재범
중독된 사랑
조장혁
여
동행
최성수
숨어우는 바람소리
이정옥
애증의 강
김재희
와인클라스
최유나
천상재회
최진희
▽자기만의 노래 찾아야〓“노래교실은 평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없는 보통 주부들의 지친 삶을 위로한다는 면에서 그 존재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씨가 4년 넘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느낀 점이다. 첫 수업 당시 어둡고 우울한 표정의 주부가 노래를 배우면서 점점 얼굴이 환해지고 옷차림이 밝아지는 것을 자주 본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도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대부분은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좋아하는 노래가 없어집니다. 자기 개성에 맞는 노래를 애써 찾지 않고 손쉽게 유행가나 남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씨는 신곡 음반을 구입해 노래 감상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가르쳐 달라는 ‘적극적인’ 수강생이 드문 것도 아쉽게 생각한다.
▼계보 따져보니/전문 노래강사 83년 첫선▼
전문 노래강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년전. 80년대 후반 한 방송사의 ‘주부가요열창’이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함께 ‘떠’ 현재 노래강사로 활동중인 사람은 전국적으로 1500여명에 이른다.
노래강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 초 주현미 현철 설운도 등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등장한데 이어 노래방 붐이 일면서 노래를 배우려는 ‘수요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
95년 7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구청 동사무소 등에서 앞다퉈 무료 노래교실을 열었다. 또 가격 경쟁력에서 할인점에 뒤지는 백화점이 무료 또는 저렴한 수강료만 받고 노래강좌를 연 것도 한몫 했다.
노래강사 1세대는 성악을 전공한 구지윤씨. 구씨는 83년 동아문화센터에서 국내 처음으로 노래강좌를 연 ‘노래강사의 시조(始祖)’. 10년전만 해도 ‘노래강사’하면 ‘구지윤’이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였다.
구씨에 이어 89년, 90년에 등장한 중견가수 서수남 현미 등이 2세대로 분류된다. 듀엣 ‘둘 다섯’의 오세복씨, ‘하사와 병장’의 이경우씨도 2세대에 속한다.
3세대는 걸쭉한 입담과 가수 못지 않은 노래 실력을 갖춘 주부 출신 강사가 주축을 이룬다.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고교 음악교사였던 문인숙씨와 주부가요제 출신인 이화숙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92년부터 노래를 가르친 이들은 수백명의 주부들을 몰고 다녔다.
4세대는 노래지도법을 공부한 20∼40대. 30∼40명이 활동중이며 94년 음치클리닉을 연 이병원씨(40·세종대 사회교육원 가요지도자과정 전임교수)가 선두 주자. 전문 노래강사만 10여명을 길러낸 그는 “노래교실은 노래를 매개로 웃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노래를 제대로 배우는 곳”이라고 말했다.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