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283㎜로 세계 평균(973㎜)보다 많지만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0%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다로 유출되는 연간 약 400억㎥의 홍수 유출량을 이용하기 위해 댐 건설이 필요하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 고조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비해 지하수 자원은 연간 3억㎥씩 꾸준히 늘어 개발 가능량은 134억㎥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말 현재 지하수 이용량은 총용수 이용량의 11%에 해당하는 40억㎥나 됐으며 2011년경에는 75억㎥를 넘게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등 선진국의 지하수 이용률이 총용수 이용량의 20∼25%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도 조만간 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올해 심한 가뭄으로 대다수 저수지가 고갈되자 지하수를 대대적으로 이용했으며 특히 심도 100m 정도의 암반 관정이 가뭄 해소에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국내 지하수 자원은 계절별로 공급 취약성이 큰 지표수를 보완하는 비상용수나 보조용수로서의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올해처럼 긴급하게 지하수 개발을 하다 보면 필수적인 사전 수리지질(수맥) 조사를 하지 못해 폐공이 속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폐공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폐공 1개에 5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폐공만 적절히 처리하면 지하수 오염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인식이다. 정부는 폐공 관리를 지하수 보호의 최우선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폐공은 오염물질을 이동시키는 통로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지하수 오염원은 아니다.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오염 유발시설은 불량폐기물 매립지, 휴·폐광산, 유류 및 액상독성물질의 지상 및 지하 저장소, 불량 하수관거, 유해 화학물질의 제조 저장 처리 및 운반시설, 농약 비료 사용 및 축산폐수 등 7군 100여종에 이른다. 환경부에 따르면 1999년 말 현재 국가 관리대상 토양 및 지하수 오염 유발시설은 1만9600여개나 된다.
이 같은 독성 잠재 오염원들은 대규모로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30만평 규모의 불량폐기물 매립장 한곳에서 누출된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규모는 수백∼수천 개의 폐공이 오염시키는 것보다 클 수 있다. 폐공 처리도 중요하지만 지하수 자원을 오염원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잠재 오염원들로부터 철저히 보호 관리할 수 있는 정책부터 펼쳐야 한다. 선진국은 지하수 자원의 사전 보호와 오염문제를 환경정책 가운데 최우선 순위로 다루고 있다.
지하수를 포함한 물 관련 문제의 유엔총회라고 할 수 있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가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열려 ‘농업·물·환경’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갖는다. 이 대회가 물에 관한 선진기술을 습득하고 지하수 자원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 정 상(연세대 교수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