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대표팀의 리더인 김경욱은 “이번 대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한국 양궁의 진면목을 꼭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의 맏언니 김경욱(31·현대모비스)의 목소리는 쉬어있다.
지난달초 진해에서 받은 ‘UDT 극기훈련’ 영향이다. 훈련을 받은 지 한달이 넘었건만 얘기를 하는 중간중간에 여전히 쇳소리가 묻어나왔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과녁 한가운데 설치된 소형카메라를 두 차례나 활로 맞혀 깨뜨리는 신기를 과시하며 올림픽 2관왕에 오른 ‘신궁’ 김경욱.
97년 결혼한 뒤 98년 은퇴했지만 뜻한 바 있어 다시 현역에 복귀한 그가 97년 이후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2일 출국한다. 극기훈련을 거부한 남자 선수들의 대표탈락 등으로 어수선한 시점에서 양궁 국가대표팀 후배들을 이끌게 된 ‘주부 궁사’ 김경욱을 만났다.
#아줌마의 힘
은퇴 후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부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게다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라는 후배들 눈칫밥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탁월한 실력을 지닌 ‘아줌마’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김경욱은 올해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3위를 해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게 됐다. 아이 돌보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바쁜 와중에도 밤잠을 아끼며 활시위를 당겨 실력으로 태극 마크를 따낸 건 실로 대단한 일.
결혼 전과 비교해 활 실력이 어떠냐고 묻자 김경욱은 “기록은 더 좋은데 마음이 많이 불안해졌다”고 털어놓는다. 7월 러시아에서 열린 유럽그랑프리대회 리그전에서도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16강전에서 탈락했는데 연습 안하곤 안 된다는 걸 절감했어요. 예전엔 정말 연습벌레였는데….”
#고통은 순간, 창피함은 영원
“선생님,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겠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 못하겠어요.” 지난달 대표팀 극기훈련 중 밤에 화장터에 가서 시체의 몸을 만지고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악을 쓰며 다른 훈련에 솔선수범하던 김경욱도 “이것만은 못하겠다”며 정필우 감독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팀의 리더로 ‘용 뺄’ 재주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화장터에 들어갔다 나왔다.
남자대표선수들의 훈련 거부로 한동안 그 필요성에 논란이 일었던 ‘UDT 극기훈련’. 김경욱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양궁은 상대성게임이지요. 위기상황이 수시로 닥치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아요. UDT훈련을 끝내고 나니 뭐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들었고 후배들과도 단합이 잘 됐어요. 어린 후배들이 밤마다 못하겠다며 눈물을 흘렸었는데 이젠 ‘언니, 그때 우리들 잘 잡아줘서 고마웠어요’라고 얘기해요.”
#눈감고도 따는 금메달?
김경욱은 가장 속상할 때가 사람들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양궁은 당연히 한국이 금메달을 따야한다고 할 때란다. 금메달을 지키기 위해 피말리는 고통이 있다는 걸 너무 몰라준다고 불만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도 부담스럽다. 더구나 그를 제외하곤 대표팀이 20대 초중반 선수들로 역대 최연소팀에 가까워 선임으로 책임감이 앞선다. 요즘 한가지 묘한(?) 걱정거리. “요즘 여자선수들의 기록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기록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예요. 서로 욕심이 생겨 견제를 하게 되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사선에 들어서면 욕심이 생기거든요. 눈앞에 먹이가 놓여 있으니까…. 후배들에게 서로 시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당부했어요.”
김경욱은 힘들 때 아이를 생각한단다. 이제 세 살인 아이는 활을 쏠 때 ‘탕, 탕’하는 소리가 나니까 엄마가 활을 들고 나가면 항상 “탕하러 간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대회에서 열심히 쏘겠다”며 다시 활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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