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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마당발이 부럽다구요?"

입력 | 2001-09-13 18:21:00


30대 후반의 사업가 박모씨. 그는 주변에서 대인관계의 달인(?)으로 통하던 인물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와 한 두 번 만나서 형님, 아우가 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나이 차이? 그런 것 쯤은 간단하게 커버하는 재주가 그에겐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친화력 또한 천부적이어서 근엄하기로 소문난 사람도 그 앞에선 왠지 쉽게 마음을 열고, 호형호제를 허락했다.

덕분에 그의 사회적 백그라운드는 정말 대단해 보였다. 언제나 ‘유효기간’이 짧은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그 백그라운드를 이용해 사업을 키워나갔다. 그가 늘 큰소리치는 건 인맥 하나 뿐이었지만 그 인맥에 깜빡 넘어가 자금을 대는 사람들 또한 언제나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를 제대로 꿰뚫어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늘 동분서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깊이있는 인간관계까지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마침내 그가 파산하고 미국인가 어딘가로 도망치듯 사라졌을 때, 그들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는 거였다.

그래도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마당발과 친화력은 아직까지도 거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그의 대인관계 능력을 우러러보는(?) 사람은 없지만. 한때 그의 놀라운 인맥을 선망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런 추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늘 대인관계를 잘 하고 싶어하는 욕구에 시달린다. 그래서 어떤 전범이 있거나, 전범이 될 인물을 원한다. 뭐,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한테 딱 들어맞는 케이스란 없는 법이다. 그리고 설령 있다해도 그들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없는 인간은 없으므로.

그러므로 대인관계를 잘 하는 사람들, 아니 잘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나만의 개성, 나만의 스타일은 대인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대인관계가 좀 서툴게 느껴지더라도, 아니면 인간관계의 폭이 좁더라도 그것 때문에 실망할 건 없다. 혹시라도 좌절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깊이없는 마당발보다는 한 두 사람이라도 깊고 넓게, 그의 전부를 알아가며 사귀는 관계가 우리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하다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