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국민’일 것이다. KS 표시가 우리 상품의 질을 인증하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책이 옳고 정당하다는 표시로 항상 국민을 들먹인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든 국민으로부터 일치된 인증을 받기는 어렵다. 독재국가에서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국민의 인증’을 받아내겠지만 우리와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대신 정치지도자의 능력을 판별하기는 쉽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얼마나 조화롭게 조정해 나갈 수 있느냐가 바로 그 잣대다. 아무리 집착과 열정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도 따르는 사람이 적으면 그는 소수를 위한 정치지도자일 뿐이다.
▼국회는 상대하지 않겠다?▼
얼마 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제는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고 해 논란이 많다. 그냥 간단히 생각하면 김 대통령은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 것처럼 보인다. 민주국가든, 독재국가든 정치의 상대는 어차피 국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매스컴의 발달로 대통령이 길거리나 집무실에서 몇 사람의 국민만 만나도 전체 국민을 상대한 듯한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매스컴을 이용하는 21세기판 직접민주주의는 앞으로도 더욱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말 속에는 석연치 않은 논리가 배어 있는 것 같다. 김 대통령의 ‘국민 상대’라는 말은 임동원(林東源) 전통일부장관의 해임문제가 자민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회표결로 기울어질 무렵 처음 나왔다. 청와대측은 김 대통령의 말에 대해 “임 장관의 해임으로 햇볕정책이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햇볕정책에 관한 한 대통령은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 국회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김 대통령이 정말 그런 뜻을 가졌을까. 공동정부의 한 축이었던 자민련이 등을 돌려 짐을 싸는 모습을 보는 김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국회를 상대하지 않겠다면 그것은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있을 수 없는 독선이요, 오기일 뿐이다.
햇볕정책을 위해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말 자체에도 논란의 불씨가 숨어 있다. 국민은 쉽게 말해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이거나 그 전체를 일컫는다. 현재 국민 전체가 햇볕정책을 한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 보완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그것이 임 장관의 해임 결의에 반영된 민의라면,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기 위해 직접 상대하겠다는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다수 국민인가 아니면 통일의 열정에만 젖어 있는 일부 국민인가.
특정 조직이나 계층 또는 계급만 지지기반으로 삼은 정치지도자들은 결국 실패한 정치지도자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지난 세기의 교훈이다. 그들은 모두가 자기의 지지세력에만 안주했기 때문에 국민 전체를 보는 조화와 균형감각을 살리지 못했다.
▼반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지금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비판을 얼마나 진지하게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이념적 갈등과 대립의 골이 이처럼 깊게 파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햇볕’에만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늘’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햇볕’만 강조하고 있는 국민뿐만 아니라 햇볕정책의 ‘그늘’을 지적하고 있는 반대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햇볕’과 ‘그늘’을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부터 열리는 남북장관급회담은 김 대통령의 그 같은 리더십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햇볕’만 의제에 올릴 것이 아니라 ‘그늘’에 대해서도 솔직한 얘기들이 있어야 한다. 민족이니 동포니 하며 감정에만 휩싸일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남북한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기 바란다. 많은 국민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그러나 북한은 듣기 싫어할지도 모르는 얘기들이 얼마나 나올지 지켜보고 있다.
남찬순chans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