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306쪽 1만2000원/청어람미디어▼
사람들이 통상 읽어야만 할 의무감으로 떠올리는 독서물은 어떤 종류일까. 혹시 학교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거룩한 고전 명저,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 작품류는 아닐까. 그런데 그게 꼭 필요한 책일까. 책이 읽히지 않는 풍토를 개탄만 할 게 아니라 책읽기의 의미와 대상, 방법 모두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의 왕성한 독서체험을 토대로 원점에서 새롭게 생각해 본 독서론, 독서술에 관한 책이다. 내용에 앞서 저자 자체가 흥미롭고 괴이한 연구대상의 인물이다. 40여권의 저서를 낸 자유 저술가로서 다나카 전 일본 총리나 공산당에 대한 연구서를 내는가 하면 생태학, 뇌과학, 현대음악, 변태성욕, 신비체험, 신흥종교, 인터넷, 우주, 분자생물학, 원숭이학 등등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목록이 나온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한우물을 파라’는 고전의 가르침을 떠올린다면 대뜸 하나를 알면 열권의 책을 쓰는 사이비를 연상하기 쉽겠지만 그런 인물이 결코 아니다. 책안에도 ‘나의 서재, 작업실’ 편에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는데, 약 3만5000권을 실제로 섭렵한 자료도서를 4층짜리 별도 빌딩(일명 고양이 빌딩)에 보관해 놓을 만큼 엄청난 독서가에 알아주는 논객이다. 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쓸 때 보통 5백권 이상의 전문서를 읽는다는데 바보들만 살 리가 없는 일본 사회에서 그가 받는 관심과 존경의 무게를 생각하면 신뢰해도 될만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오토마톤’이라는 정보과학 이론을 동원해 인간의 원초적인 지적 욕구가 내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첫장 내용은 서둘러 지나쳐도 좋다.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는 다음 장 ‘나의 독서론’에서부터 줄줄이 나온다.
먼저, 고전이 좋은 책이라는 통념부터 그는 부정한다. 칸트, 헤겔, 뉴튼, 사르트르 등은 다치바나에 따르면 고전도 아닐 뿐더러 이미 시효가 다했다. 전문 연구자 외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몇 십년 내외의 명저도 찾아 읽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의 관심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 전문서’에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최첨단 일에 대한 흥미, 거기에 인류가 이룩한 지식의 총체가 담겨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어떻게 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실용편이다. 먼저 서점에 갈 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준비한다. 반드시 여러 군데 서점을 순례하고 분야별로 관점이 다른 책 여러 권을 한꺼번에 산다. 산 책은 책꽂이에 꽂지 말고 책상 위에 쌓아 놓는다. 책은 좀 험하게 다루되 읽을 때 메모는 하지 않는다. 조금 읽어보다 시시한 책은 내던진다 등등.
왜 이런 식의 권고를 하는지 저자의 상세한 설명을 옮기는 것은 무리다. 하여간 독서로 일가를 이룬 인물의 체험담을 통해 우리가 평소 지녀왔던 책과 독서에 대한 엄숙주의가 꽤나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흥미도 구체적인 쓸모도 없는 책을 아무리 읽으라고 캠페인해도 소 귀에 경읽기일 뿐. 다치바나의 용어를 빌리자면 ‘목적으로서의 독서’, 즉 즐거움과 교양을 위해 책을 읽는 시대는 지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이다. 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다치바나를 읽으면 상당한 이유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언숙 옮김, 원제 ‘ぽくはこんな本を讀んできた’(文藝春秋·1995년)
김갑수(시인·출판평론가)
▼다치바나가 제안하는 독서법▼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4. 수준에 맞지 않으면 무리해서 읽지 말라
5. 중도에 그만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훑어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8. 책 안내서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읽으면서 끊임없이 의심하라
11.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하라
12.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13. 번역서가 난해하다면 오역을 의심하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별 것 아니다
- 여하튼 젊을 때 많이 읽어라
김갑수(시인·출판평론가)
◆ 책에 관한 책은 어떤 책있나
- 김현 '행복한 책읽기'(문학과지성사)
죽음을 앞둔 병상의 독서일기. 한권의 책을 단 몇 줄로 요약해 내는 응시의 시선 속에서 두려움조차 느껴진다. 이 책은 끔찍한 아포리즘이다.
- 김훈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신문기자' 김훈이 읽었던 우리 시와 소설의 살결. 당대의 스타일리스트로 등극하기 이전의 소박한 김훈 문장이 새롭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의 관점은 신선하다.
- 장정일 '장정일의 독서일기'(범우사)
마구 씹기, 뱉기, 토하기. 장정일만이 구사할 수 있는 거침없는 독후감 속에서 때로는 해방감을 때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기분을.
- 김춘수 외 '21세기@고전에서 배운다'(하늘연못)
소개된 책들보다 그걸 소개하는 문인 183인의 색깔이 더 재미있는 고전 안내서. 한국 문인의 관심사가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지를 입증하는 책이기도 하다.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책의 신비, 독서의 마력을 현란하게 펼쳐나간 분방한 책읽기 역사. 책사랑 끝에 서점 점원으로 출발한 독특한 이력이 박학의 날개를 달고 펼쳐진다.
- 헨리 페트로스키 '서가에 꽃힌 책'(지호)
도서관 또는 책꽂이의 역사를 풀어낸 진귀한 책. 중세이래 책이라는 '문화재'가 어떻게 보존, 유지되어 왔는지를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