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정권에서 보호중인 오사마 빈 라덴은 최근까지 탈레반의 근거지인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의 별장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현재는 종적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탈레반 정권도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그의 거취와 관련해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월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석불을 촬영하고 카불시내의 여성지하학교까지 잠입 취재하고 돌아온 분쟁지역 다큐전문PD 강경란씨(39·여·사진)는 그의 일을 돕는 아프가니스탄인이 위성전화를 통해 알려온 현지의 최근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강씨는 98년에 이어 올해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해 무사히 취재를 마쳤다.
이 때문에 외국과의 교류가 극도로 제한된 탈레반 정권하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정통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카불에서는 외국인들이 철수 러시를 이루고 외국기자들도 CNN과 뉴욕타임스 특파원을 제외하고 전부 철수한 상태라고 합니다. 라디오와 TV 시청이 제한된 카불시에서도 미국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하나둘씩 짐을 꾸려 떠나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저를 도와주는 아프가니스탄 친구는 아프가니스탄에는 오랜 전쟁으로 파괴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미사일 공격을 하면 무고한 양민들만 희생당할 것이라고 걱정하더군요.”
올해 3월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불상을 세계 최초로 촬영한 특종으로 CNN 아프가니스탄 지부장이 된 카말 하이든(파키스탄인)도 한때 강씨와 함께 일을 했다. 강씨가 탈레반의 엄격한 감시 아래서도 바미안 석굴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하이든씨의 도움 덕분이었다.
“많은 분쟁지역을 다녀봤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전사들은 가장 전설적인 존재들입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구 소련군도 물리친 게릴라전의 귀재들이잖아요. 모두들 어린 시절부터 소련제 AK소총에서 미제 M16소총에 이르기까지 총기류는 물론 견착식 박격포까지 웬만한 개인화기는 자유자재로 다루고 산악지대를 평지처럼 뛰어다닙니다. 탈레반은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전사들’을 다시 이슬람 경전에 따르는 ‘순결한 신의 전사들’로 탈바꿈시킨 것 같아요.”
강씨가 전하는 탈레반 정권하의 아프가니스탄은 숨이 탁탁 막히는 신정(神政)일치 사회다.
“외국 기자들이 카불 시내를 취재할 경우엔 탈레반 정부에서 붙여주는 공식 통역원이 따라붙는데 이들은 통역이라기보다는 감시자가 맞습니다. 어디를 방문하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촬영할지를 일일이 통제합니다. 택시도 정부에서 지정한 것만 타야 합니다.”
카불 시내에는 일반 경찰 외에 종교 경찰이 따로 있어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이슬람 율법에 위반되는 생활을 하면 단속한다. 여성들은 외출할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추는 부르카란 의상을 착용해야 한다. 강씨도 호텔 방만 나서도 스카프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강씨는 그런 감시 속에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통역을 카메라맨과 함께 내보내고 파키스탄에서 별도로 부른 통역과 차량을 이용해 여성들의 교육을 금지한 정권의 명령을 무시하고 몰래 여성들을 교육하고 있는 지하학교를 잠입 취재했다.
이 학교는 탈레반 정권 이전에 대학교육을 받았던 아프간 여성들이 운영하고 있다.
“취재 도중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학생들이 모두 피신하더군요. 그 정도로 살벌한 상황에서 여성 지식인의 맥을 이으려는 모습은 그 어떤 페미니스트 못지 않게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탈레반 정권에 대한 강씨의 평가는 물론 비판적이다.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에는 변화의 바람이 절실합니다. 그런 변화는 억센 힘과 불굴의 투지만을 숭상하는 남성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부드러움과 모성애의 포용력을 지닌 여성적 세계관에서 출구를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미국이 준비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강씨는 말했다.
“힘을 힘으로써 제압하려 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무력에 희생되는 것은 죄 없는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뿐입니다. 무자헤딘은 쇠처럼 더욱 단단해질 거고 여성적 논리는 더욱 설 곳이 없게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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