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의 대학은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살았다. 그 안에서 나도 ‘광주항쟁’이란 단어로 응축되는 삶의 무거움과 고통을 지고 살았다. 그것은 마치 강제와 같이 ‘타인들의 삶’ 속에서 나의 삶을 사유하도록 밀어붙였다. 함께 하는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노동자와 농민, 혹은 민중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계는 대체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 속에서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삶을 사유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적대가 지배하는 사회의 전복을 꿈꾸는 사회주의자가 됐다. ‘희망’이라고 해도 좋을 그 ‘꿈’ 속에서 역사와 현실을 포착하려는 이론적 행보를 시작했고,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에 등장하는 논객이 됐다.
1990년, 나는 이전의 이론적 행보를 따라 ‘사회주의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갔고, 그 감옥 안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목도했다. 이 거대한 역설적 사태 앞에서 나는 당혹했다. 내가 아는 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런 이론적(!) 질문을 던져야 했다. “사회주의는 왜 망했을까? 자본주의는 왜 망하지 않는 걸까?”
어쨌든 당혹 속에서 발견해야 했던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또한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근대인’이라는 것이고, 사회주의 사회는 근대화를 급속히 진행하면서 일상 속에서 근대적 삶, 근대적 권력을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삶의 방식을 통해 개개인이 특정한 종류의 주체, 즉 근대적 주체가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그것을 변형해 새로운 주체,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 속에서 ‘근대성’이란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했다. 도대체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근대성’이란 대체 무엇이며, 근대적 삶의 방식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근대적 사유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며,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 근대적 삶의 탄생지들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때론 철학사를 뒤지기도 하고, 건축사, 미술사, 수학사, 주거공간이나 화폐의 주변 등도 떠돌아다녔다. 혹은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추상적’ 형식을 통해 근대적 생활방식을 짜는 형식 자체를 탐색하기도 했다.
근대의 탄생지인 서역땅을 오래 헤매고 다닌 셈이다. 지금은 그런 근대를 대체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갖고 다닌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나름의 새로운 정의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 단서는 다양한 것, 이질적인 것들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세계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연합’을 통해 구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생적인 세계의 상을 나는 ‘코뮨주의’라고 부른다. ‘함께 생산한다’라는 경제주의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상생적인 삶이 강조된 코뮨의 의미를 살아나게 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이젠 상생적 삶을 추구한 다양한 노력들과 저작들을 뒤지고 있다. 서역뿐 아니라 인도와 중국, 몽골 등의 길을 따라가 볼 생각이다.
이진경(연구공간 '너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