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민사지법 피터 리크먼 판사는 15일 재미교포 정재원씨(79)가 제기한 징용피해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일본 ‘다이헤이요(太平洋) 시멘트’의 요청을 거부했다. 리크먼 판사는 이어 정씨 변호인단이 다이헤이요사를 상대로 징용자 명단과 임금대장 등 사실심리를 위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일본 기업이 낸 한인 징용피해소송 기각 요청이 거부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전쟁피해 배상은 완료됐다’는 일본 정부 의견을 미국 정부가 지지하고 있고,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또한 관련 소송을 모두 기각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의미가 더욱 깊다.
리크먼 판사는 이번 판결에서 △한국은 1951년 미일 강화조약 체결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징용 피해 한인은 조약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 해석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미 법원이 한쪽 의견만 수용할 수 없다고 기각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미일 강화조약으로 해결된 문제로 미 사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일본 기업측 주장에 대해 “이 소송은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주법(일본 강제노동 손해배상 특례법)에 따라 제기한 것이므로 정치외교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는 강제징용된 미국 거주 한인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99년 10월 일본 다이헤이요 시멘트(정씨가 끌려가 일했던 오노다 시멘트의 후신)를 상대로 피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정씨 변론을 담당한 신혜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원고측의 커다란 승리이며 정씨 외에 99년이래 접수돼 현재 미국 법원에 계류중인 한국 중국 필리핀 대만인 등의 관련 소송에도 유리해졌다”며 기뻐했다. 유대인 피해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권변호사로 정씨 소송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배리 피셔는 “이번 결정은 지난 십 수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진행된 강제징용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돌파구”라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