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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봄날은 간다', 빛처럼 와 바람처럼 간 사랑

입력 | 2001-09-17 18:31:00


‘그 봄날 내게 다가왔던 사랑은?’

영화 ‘봄날은 간다’가 던지는 질문을 굳이 몇 단어로 적는다면 이렇게 옮겨질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형용사를 여백으로 남겨 둔 유명한 카툰 ‘러브 이즈…(Love Is …)’처럼 그 대답을 ‘…’으로 처리했다.

이 작품은 어느날 녹음기사 상우(유지태)를 찾아온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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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와 지방 라디오 방송국 PD이자 아나운서 은수(이영애)는 자연의 소리를 틀어주는 프로 제작을 위해 소리 채집 여행을 떠난다. 급속하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상우는 열병에 걸린 것처럼 은수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상우가 다가갈수록 이혼 경력이 있는 연상의 은수는 계속 물러서고 결국 “헤어져”라며 사랑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또 사랑 타령인가. 그래 사랑만큼 드라마틱할 수도, 진부해지기도 쉬운 소재가 있을까. 하지만 ‘봄날…’은 감정이 덕지덕지 붙은 대사들과 여배우가 수시로 흘려대는 최루성 눈물 등 멜로 영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벗어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상우의 내면은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우를 감싸는 화면, 비와 바람 소리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다루는 한편 상우의 가족을 통해 다른 세대의 사랑도 함께 그려나간다.

할머니(백성희)는 치매에 시달리면서도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웠던 시절만을 기억하고, 아버지(박인환)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홀로 살고 있다. 사랑이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보편적인 감정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허진호 감독은 ‘접속’ ‘약속’ 등 이른바 성공한 멜로 영화들과 구별되는 감성을 보여줬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허진호 감독은 해피엔드를 바라는 관객의 기대와 달리 정원(한석규)이 죽을 때까지 다림(심은하)을 만날 수 없게 한다. 그 ‘절제의 미학’을 이번에도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영상과 소리. 봄날의 풍광이 가득한 화면 속에 대나무밭을 스치는 바람, 개울, 물소리 등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은수와 상우의 재회, 상우가 보리밭에서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는 라스트 신 등 마지막 10여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같이 있을래.”

다시 찾아온 은수가 상우에게 던진 말. 몸서리치게 사랑했던 여인의 말에도 무표정한 상우의 얼굴과 차츰 멀어져 가는 은수의 모습이 가슴을 아련하게 울린다. 마치 자신들의 얘기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한 두 배우 유지태와 이영애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마지막 타이틀이 서서히 올라갈 때 관객들은 객석에 앉은 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는 무엇이었는지.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