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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계절에 듣는 음악]가브리엘 포레 '레퀴엠'

입력 | 2001-09-18 18:37:00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나뭇잎,/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이 커다란 세계를/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믿게 해 주십시오.’(정한모, ‘가을에’ 중에서)

앗, 창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느끼는 순간, 기분이 선뜻하다. 아득히 추락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눈을 뜨니 몸이 이불 밖으로 반쯤 나와 있다. 언제 아침녘이 이렇게 서늘해졌던가?

세계의 한 쪽에 삶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 쪽에는 죽음이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지만, 죽은 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안식 속에 머문다.

죽음에 관한 음악 양식으로는 ‘레퀴엠’(진혼미사곡)이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죽은 자를 위한 미사에 쓰는 합창음악이다.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레퀴엠’은 고금의 진혼미사곡 중 유별난 작품이다. 다른 진혼음악들이 추모의 비통함과 심판의 공포를 묘사하고 있는 데 비해, 유독 포레의 곡만은 두려움이 그다지 비치지 않는, 오히려 낙원의 정경과도 같이 평화로운 곡상을 전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 악장은 그 백미라 할 만하다. 무겁게 선포하듯 금관 연주와 함께 합창이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고 외치면, 현악기가 천상의 평화를 노래하는 듯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며 마무리를 맺는다. 마치 어두운 밤의 가위눌림에서 깨어나 평온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 같다.

이 곡의 음반으로는 리처드 말로우가 지휘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컬리지 합창단과 런던 무지치의 음반(코니퍼)을 추천할 만하다. 신비감이 들만큼 정교한 앙상블을 빚어내지만 찾아보기 쉽지 않다. 구하기 쉬운 음반으로는 앙드레 클뤼탕스 지휘의 파리음악원 관현악단 판(EMI)이 있다. 정명훈이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DG)은 이탈리아 오페라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인 힘이 두드러진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가을에’. 그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과/그 속력으로/몇 번이고 까무라쳤던/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이 무서운 진리로부터/우리들의 소중한 꿈을/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공포의 기억 대신 언제까지나 그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킬 수 있을까. 노트북 컴퓨터를 걸머지고 출근하는 뉴요커의 평화가, 중동의 험한 산 속에서 가축을 지키는 순진한 소년의 평화가, 한순간 덧없는 굉음으로 마감되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모처럼 이 아침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해본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