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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부모의 과잉간섭

입력 | 2001-09-20 18:32:00


스물 아홉 살 동갑내기인 김모씨 커플. 두 사람은 결혼한 지 1년도 안돼 이혼의 위기를 겪었다. 둘 다 아직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고, 기분날 때마다 머리 색깔을 바꿀 만큼 젊고 도발적인 커플이다. 그렇다고 결혼생활에서 각자 짊어져야 할 책임이 뭔지 모를 정도로 속내가 어리지도 않다. 그런데도 사소한 싸움이 이혼의 위기로 번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싸우고 나서 둘은 각자 ‘자기 집’으로 전화해 ‘엄마’한테 “걔가 날 미워해” “날더러 인간도 아니래”고 일러바쳤다. 예전 부모들 같으면 “그 정도 일 가지고 무슨 집으로 전화질이냐?” 하고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서 양쪽 엄마들은 “어떻게 내 아이한테 그따위 짓을?” 하며 즉각 달려왔다.

이럴 때 사람이 얼마나 쉽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이 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는 이상한 피해의식, 어떤 경우에도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조급한 욕망이 뒤엉켜 사람 모양을 순식간에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돈지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엔 점잖게 나오던 얘기들이 한순간에 갑자기 틀어지더니 이혼 운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 놀란 건 젊은 커플이었다. 그냥 속상해서 하소연해 본 건데 엄마들이 너무 비장(?)하게 나왔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며 재빨리 둘만의 타협전선을 마련하고 어머니들을 진정시켜 돌아가게 하느라 두 사람은 둘이 싸울 때보다 열 배는 더 힘을 빼야 했다.

이들 어머니처럼 다 큰 자식들 일을 시시콜콜 챙기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대학생 아들 학점이 왜 이번에 내려갔느냐고 교수한테 항의하는 아버지, 대학 졸업한 딸이 취직시험 보는데 면접고사장에까지 따라오는 어머니, 혼인해 분가까지 한 아들이 직장을 옮긴다고 하자 자기가 나서서 그 회사 사장을 면접(?)하려고 드는 아버지 등등.

이런 부모들일수록 그 심리의 기저엔 자식의 독립을 바라지 않는 강한 의존성이 숨어 있다. 물론 부모 자식 사이의 의존성은 한두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떤 형태로든(무조건적인 의존이든, 교묘한 조종이든) 자식에 대한 의존도가 심할수록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좋은 부모역할로 착각한다면 진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자식도 떠나보낼 때를 알아야그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