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한 나에게 영화 ‘무사’의 선택은 처음부터 ‘즐겁게’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제작자들이 자랑한 ‘글래디에이터’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능가한다는 초반 5분의 사막 습격 장면을 보고 나자 얼이 반쯤은 나가버리고, 주인공 여솔이 명 장수의 목을 단칼에 베는 장면에선 어디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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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성수 감독의 열혈 팬이다. 폭력적인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를 그닥 즐기지 않는 내가 그동안 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폭력을 기꺼이 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연출하는 폭력에는 다이나믹함과 그와 같은 비중으로 폭력에의 당위성이 있었다. 그리고 폭력에 기대 어 사는 남루하고도 비루한 남자들이 애처러울 만큼 잘 그려져 있었다. 가끔 폼을 잡을 때도 있었지만 곧 들켜버릴 만큼 순수했고, 절대절명의 생존과 생계 문제에 부닺힌 주인공들은 한없이 동정하고 싶을 만큼 절박해 보였다. ‘비트’의 임창정을,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를 사모하게 된 것은 다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사엔? 그들이 없다.
간첩으로 오인 받은 고려 무사 23명이 고려로 가기 위해 원나라 대군을 상대로 필사의 격투를 벌인다는 홍보 팜플렛의 헤드 카피는 전쟁, 무협, 액션영화를 싫어하는 내게도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는 문구였다. 그래, 고려인이면 고려로 돌아가야지. 고려엔 그들의 사랑하는 여자들이, 초로의 부모가, 그리운 산천이, 오랜 지기가 있을 테니까…. 돌아가야지. 영화가 그 카피대로 움직였다면 나는 분명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카피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초반부 ‘우리는 고려로 돌아간다’는 주인공 최정의 구호는 극이 전개되면서 오간 데 없이 사라진다. 고려로 가려면 고려로 가기 위해 진군이나 할 것이지, 내 나라 공주도 아니고 남의 나라 공주는 왜 구하며, 책임질 수도 없는 한족 난민은 왜 끌고 다니며 행군을 어렵게 하는가? 멀리 명의 사신으로 떠난 무사의 아내 입장에서 보면 속이 터지다 못해 문드러질 일이다. ‘제 앞가림이나 잘 하지.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아니하고, 괜한 목숨만 버리네.’
‘무사’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격투 장면이 보여준 스펙터클은 한국 영화인 게 자랑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그 스펙터클을 손해보더라도 감독은 스토리 구축에 좀더 시간을 내었어야 했다. 고려의 무사가 멀고도 먼 이국 땅에서 피를 흘리며 몰살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 대부분이 가슴 뭉클하기는커녕 ‘왜 저렇게 죽어야 되는 거야?’라고 질문한다면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무사는 피를 흘리는 장면은 잘 찍었지만, 피를 흘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 답을 대지 못했다.
노희경(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