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2일 개봉하는 영화 데뷔작 ‘킬러들의 수다’로 ‘가을 동화’ 이후 근 1년 만에 팬들 앞에 나타나는 원빈(25)을 만나러 19일 서울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그는 3분 여 동안 기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매니저와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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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숫기 없음’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기자가 먼저 “오랜만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원빈은 갑자기 튀어오르 듯 다가와 “어이구”하며 기자의 두 손을 덥석 잡는 것이 아닌가. 사진 촬영을 위해 한창 의상을 고르느라 박스형 팬티 바람이었던 그는 검은색 티셔츠와 정장을 고르더니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협찬 받은 건데 스타일이 잘 나왔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어느 회사 옷을 입고 있느냐’고 서너 번은 재촉해야 자신의 옷안 상표를 들여다보며 겨우 반응하던 그였다.
지난 1년, 새로 도전한 영화가 무엇이었기에 다소곳하고 말없던 원빈을 이렇게 바꿔 놨을까? 3월 ‘킬러들의 수다’ 제작발표회 때만 해도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그의 주된 코멘트였다.
-영화가 좋긴 좋군요. 딴 사람을 만들어놨으니.
“TV 드라마에서는 촬영할 때마다 나오는 대본 외우느라 사람들과 별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지만, 영화는 일단 최소한의 준비가 끝난 상황에서 시작하죠. 연기자들끼리 서로 정서적으로 교류할 시간도 있고.”
‘킬러들의 수다’에서 그는 신현준 신하균 정재영과 함께 4명의 킬러 중 막내로 나와 어느 봄날 이들이 벌이는 사건을 풀어 가는 핵심 역을 맡았다. 특히 박중훈과 함께 한국 영화판에서 대표적인 분위기 메이커로 알려진 신현준과, 역시 배우에게 강요 대신 ‘즐겁게 놀기’를 권하는 장진 감독과의 협업이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인가요?
“내 멋대로 해보라는 거죠. 내키는 대로. 감정 안나오면 나올 때까지 참아주기도 했고.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는 주위에게 제 상황과 연기를 말로 설명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떨쳐내기 힘들 것 같았던 ‘가을 동화’의 부잣집 아들 태석 이미지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떨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을 동화’ 이후 지금까지 원빈을 휘감던 이미지는 극 중 태석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었다. 태석의 방을 청소하던 송혜교를 ‘급습’하던 그 재규어 같은 눈빛과 자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은 송혜교에게 “얼마면 되느냐”고 묻던 그 직설화법이 한동안 원빈의 대부분인 양 포장됐다.
그래서 그는 현재 방송 중인 맥주 CF에서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노려보며 “(잔) 비워, 채워 줄께”라고 ‘명령’한다. “실제라면 그냥 슬그머니 옆에 가서 잔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따라주는 게 내 스타일인데 말이죠.”
아무튼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원빈. 자기 말대로 지난 1년 동안 “기대하지도 않던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강원도 정선 출신의 이 청년이 또래 연예인이라면 으레 거쳤을 ‘개인적인 변화’가 궁금했다. 마침 옆에 있던 매니저가 “요즘 빈이가 공치는 데 열심”이라 하길래 한창 7번 아이언을 휘두르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잘 맞아요? 또래 연기자 중 누구는 벌써 싱글 친다던데.
“저 테니스 치는데요. 소속사 직원들하고 1주일에 한 두 번 코트에 나갑니다.”
골프는 그렇다 치고 요즘 연예인들에게 차는 인기와 상관없이 고급차로 평준화됐다.
“아직 소나타Ⅱ 잘 나갑니다.” 잘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원빈은 ‘서울 XX…’하며 번호판까지 일러줬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원빈에게 “홍보 기간 끝나면 소주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다음주 시사회 마치고 곧장 날 잡자”고 했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