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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중세 아랍문명 탐구 30년 여정'이븐 바투타 여행기'

입력 | 2001-09-21 18:33:00


◇ 이븐 바투타 여행기 1, 2/이븐 바투타 지음 정수일 역주/

1권 595쪽, 2권 480쪽, 각 3만원, 창작과비평사

중세의 세계적 대여행가이며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는 30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개 대륙의 10만 ㎞를 종횡무진 여행했다. 이 책은 그가 여행 중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연대기 형식으로 기술한 생생한 현지견문록이다.

그는 1304년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이슬람교육을 받은 후 21세 되던 해 홀로 여행을 떠난다. 애초 메카 성지순례와 이슬람문명 탐구를 목적으로 시작한 여행은 점차 그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탐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숱한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기면서 험난한 장기여정을 통해 3개 대륙에 걸쳐 있는 이슬람문명을 접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모든 인류가 공유할 유례 없는 불후의 탐험기록을 남기고 1368년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서구문화에 가려져 우리에게 생소한 이슬람세계의 이곳 저곳을 비롯해 14세기 전반 이슬람 문명권과 중세 동서양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세계 방방곡곡의 종교의식과 명절행사, 통치형태, 건축양식, 관혼상제, 민간요법, 각 지방의 전설과 고사, 기복신앙과 영험 등 문자 그대로 삼라만상이 기록된 이 책은 중세의 동서교류상을 입증해 주는 소중한 문헌이며, 특히 한국에서는 기존에 나와 있는 책 중 가장 희귀하고 가장 소중한 이슬람관련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븐 바투타의 여정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옮긴이인 정수일도 여러 세계를 여행했다. 아시아의 중국에서 태어나 유교문화를 접하고 아랍과 이슬람문명의 중심지 카이로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랍어와 이슬람을 흡수하고 이븐 바투타의 고향 모로코를 찾았다. 아프리카의 아랍 냄새를 맡으며 건너편 스페인에서 불어오는 유럽의 바람에 취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중심지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이곳에서 개방된 이슬람문화를 흡수하면서 학문의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를 영글게 할 기후는 청명한 하늘에 습도와 기온이 적절한 한국의 가을이었을까? 역자는 이념과 사상이 서로 다른 북한과 남한의 두 세계를 드나들면서 본서의 주인공 이븐 바투타도 체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여행한 후 한국의 모 대학에서 다 익은 그의 학문적 열매를 수확한다. 이런 역자의 오랜 여행은 본인의 뜻이나 어떤 한 체제의 임무를 띠고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의 학문적 결실을 맺게 하고자 한 ‘하늘의 뜻(In Sha Allah)’이 아니었을까?

아시아, 아랍, 아프리카, 이슬람세계에서의 오랜 여행경험과 그 지역 언어에 능숙하지 못하면, 이 책은 사실상 완역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역자의 뛰어난 언어능력과 풍부한 이슬람지식이 이븐 바투타의 불후의 여행기록을 한국어판 불후의 역작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영길(명지대 교수·이슬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