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 ’사라져 버린 바람’/앨리스 랜돌 장편소설/호튼 미플린 2001년
출간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앨리스 랜돌의 첫 소설 ‘사라져 버린 바람(The Wind done gone)’이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문화사에서 거의 신화화되고 널리 사랑 받는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정면으로 패러디한다.
출간일을 두 달 앞둔 지난 4월20일 애틀랜타주 북부 지방법원은 이 책의 출판을 금하는 예비 명령을 내렸다. 작품이 미첼재단의 주장대로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출판사인 호튼 미플린측은 이 명령은 미 헌법 수정조항 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며, 작품은 미첼 소설의 후속편이 아니라 합법적인 패러디라고 주장했다.
법적인 싸움은 미디어와 자유언론을 지지하는 단체들, 작가들과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노벨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도 이 책의 출판을 지지했다. 논란 끝에 5월25일 순회법정은 이전 명령이 헌법 수정조항 1조를 위반한다며 출판의 진행을 허락했다.
주인공 사이나라는 남부 농장 주인과 흑인 유모인 매미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혼혈아이다. 소설에서 이복 자매인 미첼의 스칼렛 오하라는 이름 대신 단순히 ‘타자(Other)’로 언급된다. 사이나라는 ‘타자’를 위해서 백인 아버지는 물론, 생모에게도 외면되며 노예 시장에서 팔려간다.
이후 그녀는 사창가를 거쳐서 유망한 백인 사업가인 R(레트 버틀러)과 함께 애틀랜타로 돌아온다. 그녀는 ‘타자’에게 빼앗긴 어머니, 사랑 받지 못한 과거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인 매미와 ‘타자’의 죽음을 겪으며 그들을 포용하게 된다. 그녀는 R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자신과 같은 피부색의 정치가를 선택하면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된다.
사이나라는 소설에서 미 남부를 상징하는 타락한 도시 조지아를 “빨아야하는 더러운 세탁물이다”고 말한다. 이 문구는 백인들의 더러워진 세탁물을 빨아왔던 흑인 역할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제 세탁물은 조지아가 상징하는 남부 사회이다. 랜돌은 현대 사회에 익숙한 억압과 저항의 주제를 통해서 미국 남부와 노예제의 역사를 거칠게 수정하며 새롭게 읽고 쓴다.
작품에서 사회, 문화, 정치적 의미만큼 흥미로운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을 변화 시키는 힘이다.
사이나라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질 때, 그녀는 진정한 주인(마스터)으로 해방된다.
그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혹시 주인으로 태어나서 노예로 사시지는 않나요?”
정명희(국민대 교수·하바드대 방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