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소리에 빠져들면 우리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조차 잊게 됩니다.”
20일 낮 12시경 대전 중구 산성동 혜천교 밑. 힘찬 농악소리가 다리 밑에서 들려왔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자 60, 70대 노인 20여명이 원을 그리며 농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앞을 못보는 대전시각장애인노인회 소속 ‘광신농악예술단’. 97년 7월 창단 때 ‘빛(光)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信)으로 살아가자’는 뜻에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대전시각장애인 노인회장 겸 풍물단장인 김태구(金泰九·73·1급 시각장애)씨는 “사회활동에 불편한 동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풍물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시작했으나 점차 농악의 맛에 빠져들어 4년 만에 첫 공연을 갖기로 하고 요즘 하루 6시간씩 맹연습을 하고 있다.
지도는 김 회장의 고향 후배이면서 대전무형문화재 ‘웃다리농악’의 전수자인 성보경(成寶慶·64)씨가 맡아 이들의 손과 악기를 일일이 잡아주며 가르치고 있다.
마땅한 연습장소가 없고 소음 민원때문에 다리 밑에서 연습을 하고 있지만 실력만큼은 어느 풍물패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상쇠인 김 회장이 “자, 민요농부가를 시작합시다”라고 외치자 장구를 맡은 성순임(68·여) 이정심씨(66·여)가 어깨춤까지 추면서 정확하게 장구의 한 가운데를 두드린다. 다른 단원들도 실수가 없다.
김 회장은 “앞을 못 보니 소리와 장단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며 “농악과 함께 여생을 즐겁게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첫 공연은 25일 오전 11시 대전시민회관 소강당에서 열린다.042-586-8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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