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씨가 주도한 삼애실업의 편법 해외전환사채(CB) 발행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연루됐다는 내용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내 상식이 잘못 된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산은 관계자의 반응은 ‘뭐 그런걸 문제 삼느냐’는 것이었다. “가짜 외자 유치인줄 알면서도 CB를 인수해 주기로 사전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것은 관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제 코스닥기업의 외자 유치 중 절반 이상이 ‘실제 인수자는 국내 자본’이란 말이 나돌 정도이니 산은 실무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허위 외자유치가 결국 주가 조작에 이용되고 선의의 투자자를 울린다는 점은 왜 무시한 것일까.
그 해답은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현 규정으로는 삼애실업이 외자를 유치 했다고 허위 공시한 부분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그렇게 거래하는데 어떻게 당국이 일일이 파악하겠느냐”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이씨 사건이 지금 정치권과 검찰을 뒤흔들고 있는 판에 금융감독 당국이 주간 증권사나 연루된 기관의 제재를 논할 때가 아니다”고까지 했다.
이같은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는 지난해 2월 삼성그룹 등 4대 재벌이 삼애실업과 똑같은 수법으로 허위 외자 유치를 했을 때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주간증권사에 대해 3개월 유가증권취급 금지조치를 내릴 때와는 판이하다.
금감원은 당시 징계조치를 취하면서 “앞으로 허위 외자 유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실적도 없다. 그 사이 해외CB를 이용한 가짜 외자 유치는 금감원 관계자의 말대로 ‘관행’으로 자리잡았고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왜 존재하는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그들의 책임 아닌가. 당국이 어떤 속사정 때문에 잘못된 관행에 눈감았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허위 공시에 속아 투자 결정을 한 개미투자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박현진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