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테러사건’을 화제 삼아 아버지와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서 대화를 나눴다. 와중에 아들은 사소한 사실을 발견했다.
“4번 틀어봐라.”
“4번요? 비디오 보시려고요?”
“아니, KBS1텔레비전. ‘테러’ 가지고 심야토론 안 하나?”
알고 보니 요즘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공중파채널과케이블채널을혼용해번호를 재설정해주는 탓이었다. 7번은 YTN, 11번은 MBC스포츠채널, 6번은 NHK 위성방송 등.
아들은 자신의 방에 있는 TV에는 케이블 방송을 신청하지 않은데다 최근 들어서는 도통 마루에서 가족들과 TV를 보지 않아 채널감각이 영 어두웠다. 아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희 집도 KBS1텔레비전이 4번이니?”
“아니, 우리 집은 52번에서밖에 안 나와. 꽤 됐지.”
“20여년을 한 채널에서 봤는데 좀 어색하지 않아?”
“그게, 적응이 되니까 그냥 똑같던데.”
아들은 무언지 모를 ‘질서’가 소리소문 없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