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곡이 하나의 옷이라면, 연주자는 그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어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다.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이유라는 어떤 곡이라도 자신에게 맞출 수 있는 탁월한 음악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임을 입증했다.
이유라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 301,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47 ‘크로이처’, 슈니트케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가니니에게’,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 등 경험과 기량이 출중한 연주자라도 하룻밤의 연주회로는 벅찬 대규모 프로그램을 들려주었다.
모차르트는 선명하고 뚜렷한 음질과 음색으로 여유 있게 연주되었다. 특히 모차르트 특유의 우수에 가득 찬 2악장 단조 부분의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연주자에게 남다른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유라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밀도 높은 톤, 열광적인 보잉, 작품에 대한 폭 넓은 통찰, 그리고 기교의 어려움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발산되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마치 ‘보라, 여기 크로이처가 있다’라고 웅변하는 것 같았다.
슈니트케의 곡에서 그는 음산하며 악마적인 성격의 곡에 어울리는 ‘조명’을 연출했다. 난해한 이 곡의 성격은 명확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전해지는 파가니니의 악기, 바이올린에 의해 ‘어두움과 악마적인 세력’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유라의 연주는 그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피아니스트 로버트 코닉의 호연이 두드러진 라벨의 작품에서 이유라는 까다로운 곡을 소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주했는데, 폭넓은 음악성과 다양한 뉘앙스에 대한 그의 직관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왁스만의 연주에서는 화려한 명기교의 작품이 편안한 티타임 정도로 느껴졌다. 이미 이전에 남다른 집중력과 에너지를 들인 대규모의 곡들을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결함 없는 기교도 놀라웠지만, 심오한 음악성을 필요로 하는 작품에 깊이 빠져 연주하는 이유라의 예술성은 분명 축복 받은 것이었다.
김 동 준(현악 전문지 ‘올라 비올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