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확정한 내년 예산안은 ‘팽창 예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올해 본예산보다 12.4%가 늘었고 1차 추가경정예산까지 감안해도 6.9% 증가했다. 본예산 증가율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이 급증했던 99년(12.6%)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예산을 크게 늘린 것은 한국경제의 대내외 환경이 나빠지면서 재정을 통한 ‘경기 떠받치기’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 또 ‘경직성 경비’가 급증해 재정운용의 탄력성이 떨어진데도 원인이 있다.
▽쉽지 않을 건전재정과 경기활성화〓정부측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재정안정을 심각히 위협하지는 않는 수준으로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강조한다. 또 내년 적자국채 발행액이 2조1000억원에 그친다는 점을 들어 ‘팽창 예산’은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다소 군색하다. 본예산기준 증가율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경상성장률 전망치 8%보다 4%포인트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경기악화와 미국 테러사건후 더 불투명해진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국회심의과정에서 실제 예산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여당인 민주당은 예산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며 진념(陳稔)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도 11월중 예산증액 가능성을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이런 ‘팽창예산’에도 불구하고 과연 경기진작에 얼마나 효과적일지 자신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또다른 고민. 사회간접자본(SOC)투자 등을 대폭 늘리긴 했지만 지방교부금, 인건비,국채 및 공적자금 이자지출 등 ‘경직성 경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가량인 57조원에 이르러 실제 ‘경기 살리기’에 쓸 수 있는 자금여유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정부측도 인정한다.
▽선심성 및 효율성 논란 빚을 부문도 존재〓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번 예산안 가운데 내년 선거 등을 의식한 선심성 부문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논란을 빚을 대목도 눈에 띈다.
내년 복지예산은 본예산 기준으로 올해보다 18.6%나 늘었고 교육예산도 11.5% 증가했다. 한국의 복지와 교육시설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해도 경제 및 재정상황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 같은 정책선택이 국민경제에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경기침체로 고용불안 우려가 커지는데 공무원 총인건비를 9.9%나 늘리고 1인당 평균 급여를 6.7%나 올린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제주도에 ‘정상의 집-남북교류센터’를 새로 짓기로 하고 예산을 배정한 것은 대통령을 의식한 ‘과잉충성’에서 나온 발상으로 꼽힌다.
▽민간 전문가 시각〓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정부는 미국 테러사태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정지출확대의 불가피성을 공언하지만 경기악화는 이미 예견됐다”며 “그동안 국가채무를 갚기보다 경기부양에 돈을 쏟아놓고 이제 와서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특히 “경기도 어려운데 복지와 교육부문에 대한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진근 충북대 교수는 “내년에는 경기악화로 적자편성이 불가피하지만 세수가 따라주지 않으면 국채발행액은 계획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팽창예산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선심성예산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