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은 당분간 르네 젤웨거일 듯 싶다.
그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긴 ‘너스 베티’(2000년), 최근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년)에 이어 그가 주연한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청혼’이 뒤늦게 개봉한다. 그가 주목받기 전인 1999년에 출연했던, 그래서 비디오 숍에서나 발견했을 법했던 영화가 주연 배우의 주가 폭등으로 스크린에서 부활한 셈이다.
‘청혼’은 제목처럼 결혼이 주제. 하지만 ‘32세 노처녀의 시집가기’를 짙은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그려냈던 ‘브리짓…’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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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장애물’이라고 여겨왔던 지미(크리스 오도넬)는 결국 여자 친구 앤(르네 젤웨거)에게 사귄지 3년째 되는 날 청혼하려한다. 그런데 아직도 결혼이 못마땅한지 앤에게 “네가 이겼어”라며 프로포즈한다. 이겼다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는 건가. 앤은 “너는 결혼할 의지가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그런데 지미는 급서한 할아버지가 남긴 “30세 생일날의 태어난 시간 전까지 결혼해야 1억 달러의 유산을 받을 수 있다”는 유언을 듣는다. 생일은 바로 내일. 지미는 앤을 찾지만 그는 그리스 아테네로 3주간 출장을 떠나버렸고, 지미는 유산에 눈이 멀어 옛 여자 친구들에게 릴레이 청혼을 한다.
이렇듯 ‘청혼’은 ‘브리짓…’처럼 결혼에 대한 사회학적 코드 따위를 담고있지는 않다. 대신 이 영화에서는 젤웨거 특유의 ‘순대국집 아가씨’ 류의 소박한 매력을, 그가 일련의 히트작을 거치면서 ‘상품화’되기 이전 시점에서 엿볼 수 있다.
확실히 2년 전의 젤웨거는 풋풋하다못해 거칠기까지 하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지금보다 두배는 더 많고, 옷 매무새는 대개 후줄근하며, 뻑하면 징징댄다. 또 TV와 현실을 헷갈려하던 ‘너스 베티’에서의 그 몽환적인 눈빛이나 ‘브리짓…’에서 살빼겠다며 운동하다 러닝머신에서 넘어진 뒤 짓는 그 뾰루퉁한 표정은 ‘청혼’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지미 일행이 “결혼하면 1억달러 준다”는 신문 광고를 내고, 몰려든 수백명의 예비 신부에게 압사 직전까지 가서야 지미가 앤의 소중함을 절감하면서 다소 뻔한 결말로 치닫는다.
지미가 청혼 작전을 펼친 옛 여자 친구 중 눈에 띄는 사람이 몇 명 있다.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가 오페라 가수이자 그의 옛 연인으로 깜짝 출연하고,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브룩 실즈는 지미와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돈 받으려면 애도 낳아야한다”는 말에 도망치는 역을 맡았다. 원제 ‘The Bachelor’. 12세 이상 관람가. 10월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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