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노처녀 여주인공은 남자친구와의 첫날 밤을 의식, ‘똥배’를 위장하는 거들형 팬티로 복부를 압박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몸매에 자신이 있는 요즘 처녀들이라면 상황은 정반대일 수 있다.회사원 홍모씨(26·여)는 회사에 가는 경우가 아니면 가끔씩 남자용 트렁크 팬티를 입고 외출하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엉덩이를 눌러주는 고탄력원단, 배를 눌러주는 덧댐 천 등 여성 팬티의 답답함이 ‘아름다움’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속박’ 이나 ‘구속’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드러내 놓고 얘기를 못해서 그렇지 그동안 임산부나 풍만한 몸집의 주부들 가운데 ‘남자 트렁크 팬티’를 은밀하게 착용해 온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 팬티 끝라인이 가랑이까지 늘어지는 드로어즈나 엉덩이를 둥글고 포괄적으로 감싸주는 부인형 팬티가 있긴 했지만, 시장의 절대다수 물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손바닥 반토막만한 삼각팬티이기 때문.
임산부 윤모씨(34)는 “부인형 팬티도 압박감이 있기는 마찬가지라 남편의 트렁크 팬티를 즐겨 입는다. 사람들의 체형이 서구화되면서 커졌는데도 아직 제조업체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반바지’나 ‘잠옷’ 대용으로, 여성 팬티 위에 겹쳐 입는 경우도 많다. 회사원 한모씨(31)는 “생리 시작일에는 왠지 불안해 남성용 트렁크 팬티를 겹쳐 입기도 한다. 달라붙는 옷만 아니면 팬티라인이 비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시장의 ‘수요’ 덕분에 속옷시장에는 여자용 트렁크 팬티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좋은사람들에서 5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2만여장을 팔았다. 여성적 섹시함을 앞세운 T자형 끈팬티는 같은 기간 5000여장을 판매하는데 그쳤다. 이 회사 영업부 윤성수 과장은 “30, 40대 주부의 호응이 높지만 편안함을 추구하는 20대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허리 부분이 조금 가늘고 가운데 ‘트임(소변구)’이 없다는 점, 리본이나 끈 같은 액세서리가 달려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자용과 남자용 트렁크 팬티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디자인이 동일하기 때문에 ‘커플 트렁크 팬티’ 도 등장한 상태다. 앞으로는 위생문제도 고려, 여성 트렁크 팬티 안에 속감을 덧댄 스타일도 개발될 예정이다.
1970년대 여성계에서 불었던 ‘노브라 운동’처럼 남자 트렁크 팬티를 입는 최근의 패션을 ‘페미니즘의 발로’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성신여대 의류학과 이승희교수는 “겉옷의 경우도 단추가 달린 쪽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를 두고 남성옷 여성옷을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90년대 들어서며 급속히 파괴되는 추세다. 이처럼 의상의 ‘유니섹스화’가 속옷까지 번진다는 측면에서 이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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