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고요? 우리나라는 매일매일 도로 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1년째 서울시내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박필수(朴必洙·55)씨는 서울 광화문 일대의 차량 흐름을 지켜보다 대뜸 우리나라의 도로를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으로 비유했다.
박씨는 이 전장의 ‘적군’은 차량 운행량을 무시한 도로폭과 차량 흐름을 생각하지 않은 신호체계, 잘못된 도로표지판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만치 않은 이들 적을 상대하기엔 연구실 등의 전문가의 힘만으론 부족하다며 20년째 현장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내 곳곳을 차를 몰고 달리며 느낀 문제점을 메모해둔 수첩만 50권을 넘었고 서울시와 청와대 등에 제출한 교통관련 제안서도 30여가지에 이른다.
96년부터는 매년 아는 택시운전사 30여명의 도움을 받아 강남과 강북의 교통량 및 운행속도를 측정하고 잘못된 교통안전시설의 위치, 도로폭 등을 도면으로 작성해왔다. 그가 서울시에 제출한 제안서 때문에 미아리 등지에는 가변차선이 마련되기도 했다.
“1mm, 1초의 오차만 있어도 사고가 날 확률은 2배가 넘어요. 출근시간, 낮시간, 야간 그리고 서울 중심과 부심, 강남과 강북을 꼼꼼히 분석한 교통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 서울의 교통시스템은 허점 투성이죠.”
그의 ‘교통캠페인’은 도로 위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는 모범택시 안에서도 계속된다. 그는 늘 승객들에게 “운전자는 달리는 법이 아니라 정지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며‘교통안전교육’을 한다.
그는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손님이 내린 뒤 다른 승객이 타자마자 또 다른 ‘강의’를 시작했다.
박씨는 “내년에 월드컵대회가 열리기 때문인지 제 이야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손님들이 많다”며 “잘못된 교통시설과 잘못된 운전습관이 동시에 고쳐져야 된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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