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중에 애국가를 4절까지 가사를 안 보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1절이야 가사 없이도 웬만큼 부르겠지만 2절부터는 가사를 안 보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큰 행사에서도 1절까지만 부르고 있으니 “애국가가 4절까지 있었나” 하는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안정남(安正男) 건설교통부 장관이 애국가가 4절까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일깨운 셈이다.
▷기왕에 애국가 얘기가 나왔으니 후렴은 생략하고 2절부터 4절까지 가사를 옮겨보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2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3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4절)… 오랜만에 소리내어 읽어보는 맛도 있지 않은가.
▷이 애국가의 노랫말이 만들어진 것은 개화 초기인 1907년이라고 하는데 작사가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구한말 개화파 인물인 윤치호(尹致昊)라고도 하고 순국지사인 민영환(閔泳煥), 항일독립투사인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등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붙여 부르던 애국가 가사에 1935년 안익태(安益泰) 선생이 새로 곡을 붙였고, 이 노래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공식 국가로 채택됐다.
▷안 장관은 건교부 공무원들에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죽었을 때도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다. 4절에 공무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공복(公僕)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그 나름의 확고한 신념의 발로라 하겠다. 하나 그랬던 안 장관이 부동산투기 의혹에다 동생들 문제마저 겹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이를 어이 하나. 건교부 공무원들은 이제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