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성 12폭포(위)와기암절벽 풍경
두타(頭陀)라, 불가의 수행은 참으로 치열하다. 일체의 번뇌는 물론 입고 먹고 자는 범부의 일상마저 욕심이라 버린 채 청정한 마음으로 불도를 닦는 수행법이라니. 그 불심 정연한 두 글자가 허다한 뭇 산 가운데 특별히 이 산의 이름된 이유는 여태껏 분명치 않다.
하나 부처님 정골사리를 연꽃 닮은 오대산에 모신 신라의 자장율사(590∼658)가 여기 이르러 골짝 들머리에 역사 유구한 사찰(삼화사·三和寺)을 창건하니 청정무구 용화삼회(龍華三會·미륵이 세 번 나실 곳)의 이 산 비경이 불법 찾아 용맹정진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불국정토라고 보았을 터.
도토리 밤 낙과(落果)소리에 산사의 동자승 새벽 잠 설치고 송이버섯 무리 지어 큰 바위 들어 올릴 만큼 가을 익는 기운 높은 이 즈음. 어느 산, 어느 골을 찾아간들 이만한 풍치 하나 못 만나 볼까 만은 두타산(해발 1353m) 무릉계의 ‘물(水)장판’ 펼쳐진 너른 반석에 앉아 고개 젖혀 둘러보는 이 산과 계곡의 풍경은 가히 산중의 산, 계곡 중의 계곡이다. 금강산 관광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자투리 시간 죽이는 소일거리로 동해항에서 지척인 여기 들렀다가는 ‘금강산엔 뭐 하러 가느냐’고 이구동성 했다던 여러 사람의 찬사에 고개가 끄덕여 질 수밖에.
1500평이나 되는 거대한 너럭바위 무릉반. 거기에는 조선 4대 명필이라는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강릉부사 부임길에 산경에 취해 초서로 일필휘지한 열 여섯자 등 수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두타산의 삼대 명물은 무릉반과 쌍폭, 그리고 용추폭포가 아닐까. 벌써 25년째 이 산자락에 사는 ‘두타산 지킴이’ 권영일씨(54)를 따라 두타통천(洞天)의 비경을 찾아 나선 길. 삼화사를 지나 무릉계곡 통행로 초입에서 권씨는 계곡 물가로 난 ‘옛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고적대의 연칠성령 너머 정선땅(임계) 지나 영월 제천 거쳐 한양 가던 옛길이다.
알바위골, 작은 알바위골…. 이름은 달라도 무릉반처럼 너럭바위로 물 흐르는 계곡은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적이 없으니 훼손도 없고 물소리 그대로 풍경 역시 청아했다.
계곡을 벗어나 왼편으로 난 가파른 산길. 30분쯤(거리 600m) 오르니 두타산성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이 장렬하게 산화한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인 이 곳. 낙락장송 한 그루가 바위틈에 뿌리박은 벼랑 꼭대기(해발 405m)에 서니 한국화 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기암을 두른 절벽, 댕기 모양의 폭포 물줄기…. 그러나 탄성은 아끼시라. 예가 시작일 뿐이니까.
산성을 내려와 두 폭포가 카메라 앵글 안에 쏙 들어오는 쌍폭 지나 용추폭포까지 올랐다. 여기까지는 서너 살 아이도 오르내리는 무릉계의 관광코스. 이후 하산길(700m 지점) 문간재 입구에서 무릉계 찾은 이의 운명은 갈라진다.
피마늘골과 하늘재를 잇는
철제계단 '하늘문'
문간재 입구에서 왼편 다리로 계곡 건너 들어선 피마늘골. 얼마 가지 않아 물가에서 깎아지른 벼랑에 부닥쳤다. 권씨가 자랑하던 환상의 ‘걸어서 하늘재’의 문전이었다. 하늘재는 산 중턱의 관음암을 잇는 가파른 벼랑길. 길이 하늘로 치솟듯 했다해서 붙인 이름인데 지금 그 벼랑에는 장승 위로 ‘하늘문’이라는 이름이 쓰인 폭 1m의 철제계단이 놓여 큰 수고 없이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계단이지 실제는 ‘사다리’에 가깝다. 각도가 70도쯤 될 까. 여섯 구간(278개)중 첫 구간(150 계단)은 뒤로 넘어갈 듯한 공포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직 표고차는 80m(해발 305∼385m).
두 구간(150+68 계단)을 올라 고깔모자 모양의 바위문을 지나면 전망이 탁 트인 벼랑 중간에 선다. 거기 서니…, 탄성도 잊는다. 두타산성은 계곡 맞은 편에, 그 위로 산성 십이폭포가 벼랑을 타고 추락한다. 곳곳에 노송 드리운 기암절벽이, 멀리 거대한 암벽 우람한 박달계곡이, 더 멀리 청옥산의 느린 마루금이 보였다. 마치 수십폭 병풍을 두른 듯 한 비경이다.
“작년 연말 직접 놓은 계단길인데 아직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가 많지 않아요.” 권씨는 하늘재야 말로 두타산 비경을 감상하기 좋은 트레킹 코스라고 말했다. 벼랑 아래 가파른 산길로 오르다 보면 점입가경이란 하늘재를 위해 생겨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 몇 걸음만 올라도 비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흥분에 다리 아픈 줄도 모른다. 하늘재 코스의 끝은 재 넘어 계곡가의 관음암(해발 405m).
두타의 진면목을 명쾌하게 감상할 수 있는 ‘걸어서 하늘재’코스(문간재 입구∼관음암·2.1㎞). 두타의 새 명물이 되고도 남을 ‘유쾌 상쾌 통쾌’한 트레킹 코스다.
summer@donga.com
▽찾아가기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동해시∼42번국도(정선 방향)∼두타산 도립공원(관리사무소 033-534-7306,7)
▽생태기행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는 두타산 무릉계곡(쌍폭 용추폭포)과 ‘걸어서 하늘재’(하늘문∼관음암)를 트레킹하는 생태기행 패키지(당일)를 판매중. 출발 은 매주 화 일요일. 3만8000원. 무박2일 일정의 열차왕복 패키지(추암일출∼무릉계곡∼첼리스트된장마을∼꼬마열차)도 있다. 매주 토요일 출발, 6만3000원.
▼식후경/무릉회관▼
산중 식당의 상차림은 어디를 가도 그게 그거다. 토종닭과 묵(메밀 도토리)무침, 산채비빔밥, 동동주…. 그러나 ‘뻔하다’고 말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자.
산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산중 식탁에 오른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그러나 그러나 두타산 도립공원 광장 식당가의 맨 위(관리사무소 아래 첫 집) 무릉회관에서는 그런 에서는 다르다. 그런 ‘외도’가 ‘별미’로 되살아난다.
주인은 동해 토박이 권영일씨. 25년째 여기 사는 두타산 지킴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 산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식탁에 내어 ‘뻔한’ 산중음식에 입맛 잃은 두타산 트레커의 미각을 돋운다. 바로 오징어 불고기다.
“바다가 지척이고 오징어가 흔하니 다른 산이라면 몰라도 두타산에서 만큼은 오징어도 산중 식탁의 한 차림이 되고도 남지요.”
굵직굵직하게 썬 싱싱한 오징어를 고춧가루를 듬뿍 친 고추장 양념에 버섯과 함께 버무린 뒤 식탁에서 돌판에 구워 좁쌀과 강냉이로 빚은 동동주를 곁들여 산중음식과 함께 먹는 맛. 산과 바다가 인접한 두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먹고 난 불판의 남은 양념으로는 김 야채를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1인분 5000원. 033-534-9990, 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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