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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82세에 킬리만자로에 오른 박희선박사

입력 | 2001-10-04 18:36:00


최근 우리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5895m)와 관련해 두가지 뉴스를 접했다. ‘국민가수’ 조용필씨가 지난달 26일 자신의 힛트곡인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년)을 통해 한국인에게 탄자니아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은 사실과 원로 금속공학자 박희선(82·朴禧善)옹이 지난달 16일 정상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3·1 운동이 나던 해인 1919년 3월 21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박옹은 일본의 도호쿠(東北)대학과 미국의 미네소타대학원을 나와 서울대 공과대 금속공학과 교수(1948년 5월∼1960년 6월 15일)를 거쳐 5·16 후 경제개발계획 수립에도 참여한 ‘과학계의 원로’. 이후 국민대 교수로 부임, 대학원장과 교육대학원장을 역임(1974년 4월 1일∼1985년 2월 28일)했으며 현재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을 맡아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80대 현역’이다.

박옹은 킬리만자로에 오르기에 앞서 76세 때인 지난 95년10월에도 셀파 1명과 함께 히말라야산맥의 메라피크봉(6654m)에 올라 이산을 정복한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노익장(老益壯)’. 그는 또 50대 초반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일본에 유학, 임제종의 고승으로부터 참선을 배워 수천명의 문하생을 배출한 국내 ‘최고수 선객(禪客)’이기도 하다.

그가 가르쳐온 ‘생활참선’의 요체는 “코가 아닌 배꼽으로 조용하고 깊이 숨쉬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 자신 남이 10번 호흡할 때 한두번만 호흡할 정도로 숨을 ‘아낀다’. 그의 참선법은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고 먹고 마시는 데도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다. 그 자신 고기를 즐기고 김치는 거의 먹지 않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아니라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상이다. 신체검사 결과 역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노화가 멈춘 상태’나 다름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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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道士)를 만나 뵙고 여차하면 그길로 수도의 길로 나서겠다’는 심경으로 최근 서울 서초동 박옹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백발에 산신령 같은 흰눈썹이 일단 범상치 않아 넙죽 큰 절로 예를 올린 뒤 ‘생활참선석천선원(生活參禪石泉禪院)’이란 대형 휘호가 걸린 거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탄자니아국립공원사무총장 등이 서명한 킬리만자로 등정공인서를 보여주며 가부좌를 튼 그는 두시간여 인터뷰 동안 한번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아 ‘40대 중반’의 기자를 주눅들게 했다. ‘과학’과 ‘정신’, ‘세속’과 ‘초월’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이론과 지식 앞에 잠시도 한눈을 팔기가 어려웠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축하드립니다.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시죠.

“지난 8월9일 케냐에 도착, 킬리만자로의 중간기점인 마랑구(2800m) 호롬보(3920m)를 거쳐 나흘 밤산행 끝에 현지시각 15일 오전 8시반 정상에 도착했지요. 40∼60대 제자 7명과 함께 떠났는데 수행연륜이 2년이 채 안된 40대 여성 수련생 한 명이 탈락해 6명만 정상을 밟았습니다. 심한 설사로 이틀간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여서 포기할 뻔 했는데 다행히 정상정복에 성공할 수 있었지요. 19일 귀국해 지금은 몸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무척 힘이 드셨겠네요?

“보통사람도 열에 일곱 여덟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합디다. 저는 30여년간 수행을 통해 1분에 한번 정도만 호흡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고산병을 몰라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간 제자들도 모두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수련의 덕인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신기한 수련법을 익히게 되셨는지요.

“일본과 미국에서 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대에서 12년 간 교수생활을 했지만 학문적 아쉬움을 느껴 만 50세 때인 69년 도쿄대(東京大)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첫 학기에 ‘꼬래비’를 해 큰 충격을 받았지요. ‘만학의 정신적 체력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의 소개로 전철로 2시간 거리인 덕운원(德雲院)에 주석하고 계시던 경산노사(耕山老師)를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지요. 경산노사는 일본 임제종의 고승으로 일체의 직위를 사양한 채 평생 참선 수도만 해 온 분으로 98세로 입적하기 일년 전 ‘내년 정월 31일 정오에 가겠다’고 말한 뒤 자신이 예언한 시각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좌탈입망(坐脫入亡)한 고승이시지요.”

-수행 후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젊어서 술을 많이 먹어 당시에 벌써 고혈압과 통풍을 앓고 있었는데 수행생활 1년여 만에 이를 떨쳐내고 안경마저 벗어던졌지요. 성적도 크게 올랐고 아무리 공부해도 피곤한 줄 모르게 됐습니다. 73년 10월 귀국 후에도 독자적으로 수행생활을 계속해 왔고 89년부터 집에서 생활참선운동을 시작, 제자들을 지도해 왔지요.”

그는 국내 생활참선계에 단 한 명 뿐인 ‘대선사(大禪師)’ 반열에 올라있다. 자신의 권유와 지도로 참선을 시작한 부인 이경수(75·李敬守)여사를 비롯한 10년 이상 경력자 5명이 ‘선사(禪師)’, 7년여 경력자 5명으로 된 ‘사범(師範)’, 5년 경력의 ‘참사(參事)’등 네등급의 품계가 있다. 그의 거실 한켠에는 스승인 경산노사가 95세 때 써준 ‘송풍운한(松風雲閑)’ 이란 휘호가 걸려있다. “노사께서 귀국 후에도 수련을 열심히 하라는 당부와 함께 써주신 것이어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노사께서 공학도인 제가 참선을 과학화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셨기 때문에 각별히 사랑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하시는 수련법은.

“집에서 화 금요일(오후 5시 40분∼8시) 두 차례, 제자가 운영하는 경기 분당의 서현2동 서당초등학교 맞은편 농협건물 3층에 있는 지부에서 월 목요일(오후 7시반∼8시반) 두차례씩 참선을 지도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30명 정도, 분당에서는 15명 가량이 수련을 하지요. 월 6만원씩 수련비를 받습니다. 그밖에는 일주일에 2, 3차례 남대문 대우빌딩 지하 헬스센터에 가서 수영과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운동을 하러 간다기 보다는 각계 각층에 있는 분들로부터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지요.”

-‘생활참선’의 ‘과학적 근거’가 있을텐데요.

“참선을 하면 정신이 통일되면서 뇌와 몸 세포가 활성화돼 공부도 잘되고 일의 능률도 오릅니다. 5, 6년 전 제가 부산의 한 고교에서 참선을 지도했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돼 교사와 학부모들이 깜짝 놀란 일이 있어요. 86년 첫 출간한 ‘과학자의 생활참선기’란 단행본을 두 세차례 걸쳐 개정해 ‘생활참선’과 ‘생활참선건강법’으로 엮어냈습니다. ‘생활참선건강법’은 올 연말 미국에서도 번역 출판됩니다. 그 사람들이 철저한 과학적 뒷받침을 요구해 3년 간 최근의 연구결과를 수정 보완했지요.”

-최근의 연구결과는 무엇인지요.

“참선이 인간의 유전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과 100세 이상 산 인간에게는 장수 유전인자가 생긴다는 것이지요. 나는 오랜 수련으로 보통사람보다 일찍 장수 유전인자가 생겼고 내 스스로 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제자 중에는 유명인사도 꽤 있다는데….

“정계의 최병렬(崔秉烈) 강운태(姜雲太) 신순범(愼順範)씨 등이 내 지도를 받았죠. 하지만 평범한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정주영(鄭周永)회장도 참선을 배웠다면 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대통령과 이건희(李健熙)회장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요. 큰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또다른 ‘도전’은?

“5년 뒤 내 나이 87세에 남미의 최고봉인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6960m)에 오를 계획입니다.”

-90세까지는 너끈히 사실 수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건 두고봐야 알겠지요. 인명은 재천(在天)이니까.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조금만 조심하며 살아도 곧 90세까지는 살게될텐데 30년 이상 고된 수련을 한 사람이 그 나이도 못넘기면 어떻게하겠습니까.”

약속된 2시간을 넘겼다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