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초년병인 마크 헨스비에게 PGA투어 참가라는 만찬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접시닦이 였다. 호주에서 태어나 꿈은 원대했지만 그 꿈을 뒷받침 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던 핸스비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래의 동료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그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다. "고된 일이에요." 고향인 탬워스의 한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던 6개월을 되돌아보며 핸스비는 이렇게 말했다. "진저리 나게 싫었죠. 하지만 먹고 살자니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바이 닷컴 투어에서 4년을 보낸 뒤 헨스비는 서른의 나이로 마침내 주류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는 기쁨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작년에 번 상금(바이 닷컴 투어에서 225,255달러를 벌어 상금랭킹 2위에 올랐다)은 제 평생 만져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못한 액수였습니다. 호주에 그냥 있었더라면 어림도 없었겠죠."
그는 상당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의 약점이란 바로 자신감의 결여이다. 그가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탓이 컸다고 한다.
헨스비의 말에 따르면 공군으로 오래 복무하신 아버지는 "항상 우리들이 억눌렀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고 한다.
헨스비가 가능성을 내비쳤던 10대 시절에 조차 아버지는 격려를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헨스비가 열일곱이 되어 일자리를 갖자. 아버지는 숙박료라며 300달러를 월급에서 떼어갔다.
아들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야망만큼은 누구도 꺽지 못했다.
"매일같이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프코스를 가서 학교에 가기 전까지 연습을 했고, 방과후에도 어두워질 때까지 연습을 계속했어요."
식당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저녁 7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접시를 닦았지만, 몇 시간 눈을 붙인 다음엔 곧장 연습장으로 향했다.
1944년 3월, 헨스비는 시카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동향 사람들이 있어서 잠자리는 해결할 수 있었다. 헨스비는 버틀러 내셔널에서 캐디를 하면서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했고, 일리노이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기도 했다.
5개월 뒤, 거처를 제공해주던 사람들이 떠났고 그는 홀로 남겨졌다. 몇 주 동안은 코그힐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지냈지만 오래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장 관리인인 로니 브리지즈는 깜짝 놀랄 광경을 접하게 된다.
9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브리지즈는 새벽 6시에 개장 준비를 하려다가 주차장에 헨스비의 차가 세워져 있는걸 보았다. 기온이 영상 3~4도를 오르내리던 때라 차 안에 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커다란 이불 더미가 보였습니다." 브리지즈는 그 때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창문을 두드리닌까 이불이 움직이더니 헨스비의 얼굴이 나타나더라구요." 돈을 아낄 생각으로 자동차에서 잠을 잔 게 한 달째였다. "여기서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비밀이 드러난 후로는 차에서 자는 것을 그만 두어야 했다.
"돈이 없지는 않았지만 호텔비로 써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클럽하우스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연습을 하러 나갔죠. 밤에는 너무 추워 차를 몰고 주변을 몇 바퀴 돌기도 했습니다. 발을 녹이려고 히터를 틀어놓고 잠을 잤죠."
하지만 이번 달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코그힐에 서게 된다.
에드빌 웨스턴 오픈에 선수로서 참가한 것이다. 주차장에서 잠을 자던 그가 선수용 차를 몰게 되기까진 오랜 미니 투어 생활을 거쳐야 했다.
1997년엔 나이키투어에 진출했다. 1998년에 헨스비가 투어에서 우승을 하던 해에 아버지는 마침내 아들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1년 뒤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헨스비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그립다고 말한다. "아버지 말년에 함계 보내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헨스비는 현재 아내와 1살 난 아이와 함께 새 삶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완전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나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코스에 서면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언제나 마음속 한 구석에선 '넌 형편없어'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시련의 나날을 보낼 때에도 헨스비를 위로해주는 한 가지는, "그래도 접시닦이 보단 낫다"는 것이다.
(자료제공 : http://www.thegol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