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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스포츠서울 인비테이셔널 우승자 이정화

입력 | 2001-10-04 20:34:00


지난 96년 프로테스트에서 박세리, 김미현과 함께 프로에 입문한 이정화는 팬들에겐 무명이었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언제나 우승 후보로 평가 받던 인물.

프로 입문 이듬해인 97년 삼성카드배 KLPGA 선수권에서 오명순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며 상금 랭킹 9위에 오르는등 그 동안 꾸준한 성적을 거두며 우승을 노려왔다.

그러던 그가 생애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것도 2라운드에서 스코어 카드 확인 실수로 1타를 손해보고 최종일 국내 필드의 최강자인 정일미, 강수연과 리더 조로 라운드한 끝에 우승해 주목 받았다.

162cm, 67kg의 체격 조건을 갖춘 이정화는 드라이브샷 거리가 2백 20야드에 불과하지만 아이언 샷과 퍼팅이 좋아 안정된 게임을 운영한다.

미들 아이언이 장기인 이정화는 특히 6번 아이언이 가장 강한 클럽인데 이번 스포츠서울 인비테이셔널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부처가 된 16번홀 (파 4,3백 45야드)에서 1백 5야드를 남겨두고 6번 아이언으로 세컨드 샷을 날려 볼을 핀 1m에 붙이며 이를 버디로 연결시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드라이브 샷의 비거리가 짧은 대신 1백55~1백60야드 이내의 거리에서 강한 그는 대회장인 휘닉스파크의 다소 짧은 전장 길이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 한 요소로 작용했다.

공식 대회에서 67타가 베스트 스코어인 그가 진정한 강자로 올라서려면 10야드 이상 비거리가 늘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 대명초등학교 시절 멀리 던지기에서 남학생들을 제치고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힘이 좋았던 이정화는 이를 눈여겨본 외삼촌의 권유로 대명여중 1학년 때인 지난 90년 골프에 입문했다.

경북여고에 진학하면서 많은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했지만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중.고교시절 골프선수로 활동했으나 학교에 골프팀이 없었던 관계로 그의 골프는 대구 지역에서만 통했다.

프로 입문 뒤에도 타고난 운동 신경과체력을 바탕으로 상위권을 기웃대던 그가 한 차원 다른 골프를 구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체중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다.

80kg에 달했던 그는 최근 2년 사이에 지방 흡입술 없이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으로 13kg이나 감량해 스윙 교정은 물론 단단한 체력을 갖춰 내심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남은 시즌에서 1승 정도를 추가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결코 욕심이 아니라는 것이 스포츠서울 인비테이셔널을 지켜본 골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

이정화는 2라운드에서 자신이 버디를 잡은 8번 홀(파3) 스코어를 파 4홀로 착각해 3을 적고 동그라미를 그려(버디를 의미함) 1타를 손해보게한 마커를 탓하지 않았다.

김동휘 경기위원장이 "실격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그렇죠."를 연발하며 눈물을 흘리며 미안해 하는 후배 마커를 오히려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후배 마커를 달래며 함께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긴장을 푸는 등 넉넉한 마음을 보여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강수연을 1타차로 누르고 우승을 결정하는 버디 퍼팅이 들어가자그린 주변에 서있던 후배 마커는 눈물을 터트렸고 이정화는 생에 첫 승의 감격을 누르고 가장 그에게 먼저 그에게 달려가 포옹을 했다.

"저도 그렇지만 그 후배도 얼마나 긴장했겠어요" 우승 트로피보다 빛난 이정화의 아름다운 말이다.

(자료제공 : http://www.thegolf.co.kr)